티스토리 뷰
2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2001년 3월8일 한·미 정상회담을 지면에 옮기던 경향신문 편집국 풍경이 그렇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을 ‘디스 맨(this man)’으로 불렀던 그 정상회담, 경향신문에는 혼돈의 순간이었다.
DJ는 부시가 취임하자마자 미국으로 달려가 햇볕정책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내려고 했다. 정상회담 전날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클린턴 정부의 정책을 이어가겠다”며 북한과 곧 접촉할 듯 말한 데까지는 순조로웠다. 그러나 파월은 다음날 발언을 뒤집었다. 부시와 네오콘 참모들에 의해 발언 취소를 강요당한 것이다. 우리 당국자들은 그 번복이 일회성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후 미국 신문들의 보도를 접하고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알았다. 당국자들의 우왕좌왕은 고스란히 국내 언론의 보도에 투영됐다. 당시 데스크가 “그러니까 회담이 잘되었다는 거야, 잘못됐다는 거야!”라고 고함치듯 되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경향신문은 양국 정상이 대북 정책에 대한 이견을 해소한 성공적인 회담을 했다고 보도했다. ‘한·미 정상회담-DJ 포용에 부시 포옹하다’라는 제목과 함께.
최근 한·미 상황을 20년 전 DJ-부시 정상회담 즈음과 비교하는 시선들이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와 대북 정책 조율에 들어간 문재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성급히 추진한다는 것이다. 유사점이 없지 않다. 미국의 정권이 교체됐고, 양국 간 대북 정책 조율은 매끄럽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북한 문제는 미국에서 재미가 없는 의제라는 것도 변함이 없다. 잘해야 본전인 아이템이어서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미국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나가기는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다른 점은 더 많다. 부시는 처음부터 DJ의 햇볕정책을 존중할 의사가 없었다. 미국 대북특사로 일한 바 있는 찰스 프리처드는 훗날 회고록에서 김 대통령이 첫 전화통화에서 (북한을 포용해야 한다고 하자) 부시가 송화구를 손으로 막으면서 “이 사람 누구야. (북한을 믿다니) 왜 이리 순진해”라고 말했다고 술회했다. 반면 바이든은 DJ 햇볕정책의 지지자다. 그의 DJ에 대한 존경은 알려진 것 이상이다.
DJ의 임기가 2년 남아 있었던 점도 지금과 다르다. DJ로서는 부시와의 정상회담을 서두를 이유가 충분했다. 성사 일보 직전까지 갔던 북·미 수교협상 등 그동안 쌓아올린 성과가 아까웠다. 한 고비를 넘을 시간적 여유가 있어 보였다. DJ를 포함해 모두가 희망적 요소에 기대를 걸 만한,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당시 우리 당국이 파월과 딕 체니 부통령 등 네오콘 당국자들 간 역학관계나 내부 기류를 파악하지 못한 것과 같은 전철을 지금의 당국자들이 되밟을 가능성도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상회담의 성과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1년 뒤 DJ는 도라산 전망대에서 부시를 설득해냈다. 그해 여름 2차 북핵 위기라는 폭탄이 터졌을 때도 부시를 견인하며 평화적 대응 기조를 유지했다. 정상회담 실패가 없었다면 이런 성과도 거두기 어렵지 않았을까. 길게 보면 외교에서는 완벽한 성공도, 완벽한 실패도 없다. 다행인 듯 보이는 일에도 어딘가에서는 불행의 씨앗이, 대재앙 속에서도 행운의 실마리가 잉태하게 마련이다.
임기를 1년여 남겨둔 문 대통령에게 북한 문제를 풀고자 하는 조급증이 없을 수 없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자니 그동안 이뤄놓은 것이 아깝다. 그렇다고 새로운 정책을 과감히 시도하기도 마땅치 않다. DJ-부시 관계와 유사성을 놓고 따진다면 바이든이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를 상대할 때가 더 비슷하다. 문 대통령은 그런 트럼프도 상대했다. 문 대통령은 목표를 현실적으로 잡아나갈 필요가 있다. 올 상반기는 대북 정책을 조율하는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상대는 외교를 잘 아는 바이든이고, 미국 민주당에는 대북협상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즐비하다. 이들이 달라진 북핵 환경을 방치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 외교 점검의 결론은 생각보다 일찍 나올 수도 있다. 바이든 시대에 새로운 모색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때를 기다리며 준비해야 한다. 과제는 우리가 좀 더 정교하게 정책을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 임기 내에 결실을 보지 못하면 어떤가. 다음 정권에서 완성해도 좋다는 자세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지금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이중근 논설실장
'정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광희의 아이러니]우리가 대법원장에게 기대하는 것 (0) | 2021.02.15 |
---|---|
[여적]블랙리스트 (0) | 2021.02.15 |
[이기수 칼럼]설 상에 오르는 ‘시즌2’ 대선 (0) | 2021.02.09 |
[이봉수의 참!]법관이 정의를 독점해 벌어진 일 (0) | 2021.02.09 |
[홍성수의 물구나무]정의당 성폭력 사건의 교훈 (0) | 2021.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