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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무조건 이겨놓고 보아야 한다는 말이 진리처럼 굳어져 있다. 맞는 말이다. 2등은 의미가 없으며, 누구도 2등 하려고 선거에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어떤 후보가 당선되느냐보다 나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책이 더 의미가 있다. 때로는 졌지만 멋진 승부를 펼친 후보가 더 큰 울림을 남길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대선판을 보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마치 고구마를 내리 10개쯤은 먹은 듯하다. 야당에는 정책 캠페인이라고 할 것 자체가 없다. 유력 주자들이 이제서야 막 정치에 입문했노라며 정책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대놓고 말한다. 이런 후보들에게 국가 미래 비전과 정책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다. 여당 후보들은 조금은 낫지만 그렇다고 칭송할 정도는 아니다. 1위와 경쟁하는 것은 좋은데 지역주의를 끌어들이고 침소봉대식 자질 검증으로 날을 새운다. 여야의 젊은 후보들 역시 잠시나마 판을 주도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못하고 있다. 정녕 우리에게 멋진 대선 승부는 신기루인 것인가.

버니 샌더스(80)는 미국의 유명 정치인 중에서는 유일하게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이다. 50년 정치경력에서 진보 외길을 걷다 2016년과 2020년 두 차례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었다. 민주당원이 아닌 무소속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호응으로 힐러리 클린턴과 조 바이든 후보를 잇따라 위협했다. 소득 불균형 해소와 기후 변화 적극 대응 등 진보적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폭발적 지지를 받았다. 소액기부를 통한 자금 마련 등 캠페인까지 개혁적이었다. 그 서슬로 당의 보수화에 제동을 걸어 활력을 불어넣으며 클린턴과 바이든 후보의 정책을 좌클릭했다. 만약 지금 한국에 샌더스가 있다면, 언론중재법 개정을 강행하는 여당을 그냥 놔둘 리 없다. 기본소득 논쟁이 재정건전성이나 포퓰리즘 프레임에 갇혀 지지부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낡은 경제이론을 통렬히 공박하는 기개와 디테일도 보였을 것이다.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버락 오바마와 맞섰던 미트 롬니(74)도 대선판을 멋있게 이끌었다. 보수당의 후보가 되기엔 절대 불리한 모르몬교 신자였지만 이를 뛰어넘으며 보수의 가치와 정도를 지켜 인상을 남겼다. 엘리트이면서도 겸손했고, 오바마를 위협할 정도로 토론을 잘했지만 상대방을 존중했다. 그는 “미국의 좌우 모두에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있지만, 나는 보수주의를 지키겠다”고 했다. 롬니는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상원의 탄핵 표결 시 공화당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두 차례나 찬성했다. 보수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같은 당 대통령에게 맞서게 한 것이다. 그의 대선 도전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미트 롬니, 그의 대선 출마 이야기> 막판 캠프 해단식의 장면이 깊은 울림을 던진다. 캠프 총괄 책임자가 마지막으로 “다른 후보와 함께해 이기느니 (롬니) 주지사님과 함께 지는 쪽을 택하겠다”고 말하자 장내에는 환호가 터진다. 비록 승부에서는 졌지만 정치에서는 지지 않았다.

샌더스와 롬니 두 사람 모두 현재 연방 상원의원이다. 샌더스는 때로는 바이든 행정부를 돕고, 때로는 견제하면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민주당 내 진보적 견해를 단단하게 지키는 보루다. 그의 노선을 이으려는 정치세력이 탄탄한 만큼 언젠가는 판을 뒤집을 수도 있을 것이다. 롬니 역시 공화당 내 트럼프 세력을 저지하는 단단한 지지대로 존중받고 있다. 이런 그들의 위상은 둘이 대선에서 벌인 선전 덕분이다. 선명한 정책과 정정당당한 선거운동이 낙선한 그들을 승자 못지않은 강자로 만들고 있다.

초반 기세를 올리던 샌더스는 경선 막바지에 난관에 봉착했다. 바이든이 중간지대 후보들의 지원을 받으며 유권자를 끌어모으는데 속수무책이었다. 그때 참모들이 바이든을 공격하자고 제안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롬니 또한 네거티브 캠페인을 하자는 캠프 내 주장과 유혹을 뿌리쳤다. 오바마가 해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다고 발언한 것도 그가 아니라 트럼프였다.

내년 대선도 중간지대가 승부를 결정할 것이다. 승부의 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정권교체론만 믿는다면 야당은 필패한다. 여당의 오만함 또한 용납되지 않는다. 시간은 남아 있고, 승부를 가를 중간지대는 견고하다. 시민들은 좋은 지도자와 정정당당한 캠페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 않은 후보를 응징할 의지도 품고 있다. 유권자들은 더 멋진 대선 승부를 볼 권리가 있다.

이중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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