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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5년 전부터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우리 문화를 비교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던 나에게 코로나19는 직격탄이었다. 많은 것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사실 올해는 4월23일 출국하여 영국과 덴마크에 30일 남짓 머물다 돌아올 계획이었다. 1년에 2차례 이상 4년을 이어온 영국과 프랑스에 대한 작업 중 한 가지를 올해 봄에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곤 덴마크로 가서 북해와 맞대고 있는 430㎞ 남짓한 덴마크의 해안선을 따라 새롭게 시작할 작업에 대한 사전 답사를 할 계획이었다. 그 작업을 위하여 수년 동안 준비하고 노력해왔지만 기다릴 밖에 어쩔 도리가 없게 되어버렸다.
더욱 속이 상한 것은 나는 보통 사람들처럼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40일마다 주치의에게 검진을 받아야 하고 약을 처방받아야 한다. 그날로부터 40일을 건강하게 버틸 수 있는 주사도 1시간에 걸쳐 맞아야 한다. 그것을 자조 섞인 말로 업데이트라고 하는데 11년째 한 차례도 거른 적이 없으니 그것을 하지 않거나 약을 먹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 출장길 내내 조바심이 곁에 있다. 작업에 대한 것과 몸에 대한 스트레스가 동시에 나에게 머물기 때문이다. 출장에서 돌아와도 조바심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조바심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것은 사진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나마 사진의 방식이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고 난 다음부터 조금은 덜해졌다지만 별반 차이는 없다. 필름을 사용할 때는 촬영을 해서 곧바로 볼 수 있는 것은 폴라로이드 방식밖에 없었다. 그것 외에는 셔터를 누르면 필름에 상이 맺힌 채 필름 카트리지 안에 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잠상(潛像)이라고 한다. 그 잠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약품처리를 하는 과정이 현상이다. 사진가들은 아직 현상이 되기 전까지 묘한 조바심에 시달리곤 하는데 자신이 취한 결정적인 행동의 결과를 알지 못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디지털방식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 결과를 확인할 수 있으니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렇지만 미리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필름을 사용할 때보다 좋아졌다거나 나아졌다고 할 수는 없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모니터를 통해 바로바로 확인하게 되니 심리적 불안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성에 차지 않는 사진들을 스스로 수정해 촬영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그것은 디지털방식이 되면서 인간의 책임이 커지고 더욱 빠르며 정확한 판단이 요구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국 디지털방식은 필름방식에 비해 인간에게 더 많은 수고를 요구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기계식 카메라와 수동초점 렌즈로 사진을 배운 사람들은 덜하겠지만 디지털카메라와 자동초점 렌즈로 사진을 배운 사람들은 수동초점 렌즈에 대한 호기심은 있을 테지만 많은 이들이 불편한 무엇이라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한다. 그러곤 특정 구역에서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자동초점 렌즈나 카메라의 제조회사에 더 나은 기술을 요구한다. 물론 초점을 맞추는 불편함이라든가 요즘 렌즈에 비하여 떨어지는 광학적 해상도를 감수하고라도 수동초점 렌즈만으로 사진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특정 렌즈 회사들 몇은 지금도 수동초점 렌즈만을 고집스럽게 생산하고 있으며 그것들은 성능이 좋기로 소문나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동초점 렌즈와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를 원한다.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카메라와 렌즈 시장은 모르지만 아마추어들의 시장은 포화 상태를 지나 사그라지는 모습을 보인다는 분석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수년 내에 몇몇 카메라 제조업체들이 사라져 시장구조가 재편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더구나 카메라의 신규 수요가 봄에 집중되는 현상이 있었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예년의 3분의 1 정도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이처럼 카메라의 구매 수요가 줄어든 이유 중 코로나19보다 더 큰 것은 스마트폰에 달린 ‘폰카’의 기능이 너무 좋아진 때문이라는 조사도 있다. 그래서일까. 앞에 말한 것처럼 한동안 카메라와 렌즈 같은 하드웨어 시장이 요동을 치더니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앱과 같이 사진의 후반 작업을 하는 소프트웨어로 변화의 축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디지털 방식의 사진에서 후반 작업은 필수이며 카메라가 팔린 만큼 잠재 수요가 발생한다. 요 몇 년 사이 ‘포토샵’으로 대변되는 사진 편집프로그램들의 변화는 놀랍다. 독보적인 프로그램과의 차별화를 이루기 위하여 몇몇 업체들은 자신들의 프로그램에 장착된 ‘AI’ 기능을 전면에 내세우며 공격적인 광고를 한다. 이번 봄에 틈날 때마다 그러한 프로그램들을 죄다 사용해 봤다. 프로그램들마다 자랑하는 기능을 적용해 보면 헛웃음이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속으로 연신 ‘이런 것까지’ 혹은 ‘우와’라는 냉소적인 감탄사를 내뱉으며 말이다.
그러나 그 다양하고 놀라운 기능들 중 딱히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없었다. 클릭 한번이면 없던 구름도 만들어 넣고 흐린 날도 햇살 좋은 날로 만들어버리는 ‘AI’ 기능이 화려하기는 하지만 나처럼 단순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마땅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사진을 ‘찰나의 미학’이라고 했다. 사진가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거의 모든 것이 결정되었으며 수정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의 힘을 빌려 컴퓨터에서 마음껏 매만지게 된 지금의 사진은 과연 기존의 단어가 함의하고 있는 뜻 그대로 사진일까? 아니면 ‘미디어아트(매체예술)’일까. 코로나19 탓에 촬영은 가지 못하고 뜻밖에 묵은 고민 하나를 짊어진 꼴이 되어 버렸다.
<이지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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