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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피해는 광범위했지만 요양원이 특히 취약했다. 전염병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 노인들이 격리된 공간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너무 쇠약해져 집에서 돌보기 어려운 경우 시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입소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건강 나이를 늘려야 하는데, 그 기반은 역시 마을이 될 것이다. 집이나 동네에서 계속 생활하면서 나이 들어가는 ‘지역사회 계속 거주’(Aging in place)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노인들이 지역에서 편안하게 인생의 후반기를 보낼 수 있기 위해서는 의료 및 복지 시스템, 도서관, 문화센터, 공원, 좋은 일거리 등 여러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울릴 수 있는 친구나 이웃들의 존재다. 가족의 수가 줄어들고 있어 집 바깥에서 만나는 지인의 비중은 더욱 커진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관계망이 끊기거나 삶에 대한 의욕 상실 또는 건강 문제 등으로 집 안에 은둔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거리 두기가 길어지면서 상황이 더 나빠졌다.

동네마다 여러 모임과 활동의 장(場)이 있기는 하다. 아쉬운 점은 경제적인 여유가 없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학력이 낮은 이들에게는 어떤 진입 장벽이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형성되는 폐쇄성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로당을 예로 들어보자. 어느 동네에든 마련되어 있는 경로당은 노인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사랑방인데 이용자가 점점 줄어들면서 ‘고령화’되고 있다. 고질적인 ‘텃세’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수 핵심 관계자들끼리 배타적인 운영을 하다보니 새로운 주민이 합류하기 어렵고, 구태의연한 프로그램을 반복하니 ‘젊은 노인’들이 가지 않는다.

경로당은 매력적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 노년층으로 편입되기 시작하는 베이비부머가 가고 싶은 경로당은 어떤 모습일까. 노인들만 머무는 정체된 공간이 아니라, 여러 세대가 어울리는 역동적인 장소가 되면 좋겠다. 다행히 최근에 ‘개방형 경로당’이라는 모델이 다양하게 실험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 아이들이 경로당에 와서 전래 놀이를 배우고 동네 텃밭에 나가서 함께 작물을 가꾼다. 고등학생들이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노년의 경륜과 지혜, 젊은이의 열정과 호기심이 시너지를 일으키는 마을을 즐겁게 상상하게 해준다.

경계를 가로지르는 만남은 다른 공간이나 활동에서도 바람직하다. 세대, 젠더, 계층, 직업, 국적 등의 차이를 넘어 ‘소셜 믹스’가 일어날 수 있을 때 지역사회는 풍요로운 삶터가 된다. 친숙한 사람들끼리의 끈끈한 연대가 아니라 잘 모르는 사람들의 느슨한 연대로 나아가면서 더욱 다채로워진다. 낯선 이들을 환대하는 공동체가 오래 성장할 수 있다.

 

외로움이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신체의 건강에도 매우 해롭다는 것이 여러 연구에서 거듭 밝혀지고 있다. 고립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작업은 이제 공중 보건과 방역의 의제로 대두된다. 이웃이 즐겁게 대면할 수 있는 환대의 공간, 취약한 마음들이 접속하여 안전한 일상을 빚어내는 플랫폼,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건너가는 사회적 면역력은 거기에서 배양된다.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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