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검찰은 나쁜 놈들을 잘 잡으면 된다.” 검사장 한동훈이 법무부 장관 후보 지명자가 된 뒤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한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4항에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명시되어 있다. 피고인 또는 피의자가 유죄 확정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로 간주한다는 원칙이다. ‘나쁜 놈’이 되는 것은 수사를 통한 범죄증거를 기반으로, 검찰의 기소를 거쳐 법원의 판결이 나온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피의사실만 가지고 피의자를 이미 범죄자 취급하고 있으니, 이런 인식 소유자의 장관 자격을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형사소송법 제307조는 증거재판주의를 밝히고 있다. 범죄사실은 증거에 의해서만 인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2013년 탈북민인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의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국정원과 검찰이 제시한 결정적 증거라던 북한에서 찍은 사진, 중국을 거친 북한 출입국 기록, 그리고 유우성씨 동생의 증언 모두 가짜로 판명난 것이다. 증거는 검사가 기소를 결정할지를 결심할 핵심이다. 증거를 기반으로 한 범죄사실 증명으로 나쁜 놈이 되는 경우와 이미 나쁜 놈으로 낙인찍은 피의자에게 덮어지는 증거는 천지 차이다. 검찰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검찰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대한민국 검찰은 무소불위라 부를 만큼 거머쥔 권력이 대단했다. 자체 수사 인력과 수사개시권은 물론,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과 종결권 및 영장 청구권과 기소 결정의 권한을 가졌으니, 두려울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2020년 국회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통과·공포되었음에도, 민주당에는 지금 아니면 때를 놓친다는 절박감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심혈을 기울인 검찰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곧 깨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급기야 민주당은 지난 15일 검찰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산업·대형참사) 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검찰청법 개정안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당이 빼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는 칼에 검찰은 총장부터 일선 검사에 이르기까지 방패를 든 전면전에 나섰다. 검찰은 수사권 유지가 경찰의 부실 수사 견제와 인권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인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와 검찰청의 독립예산 편성권 및 검경 수사권 재조정과 더불어 최근의 한동훈 장관 지명을 보면서 많은 국민은 검찰 공화국이 몰고 올 악몽을 꾸는 것 같다고 우려한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수사권이 폐지되면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할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럼 기소만 전담하고 수사권이 없는 나라의 검사들은 아무 의미 없는 존재인가? 검사가 증거와 법률을 근거로 참된 인권 수호자로 나서는 것이 어떻게 의미가 없는 일인가? 검찰이 경찰 수사에 신뢰를 갖지 못한다면, 국민이 바라보는 검찰도 그렇다.

검찰이 권력의 시녀 내지는 실제 권력을 휘두르는 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법과 민중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선 수사권 요구가 아닌 밖과 안으로부터의 체질 개선이 먼저다. 검사의 정치적 중립성은 반드시 지켜야 할 항목이며, 사건의 배정·할당과 관련해서는 공정성과 독립성의 요건을 충족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최근 일어나는 일들을 보자.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가 고발 3년 만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면, 검·언유착 채널A 사건 연루 의혹을 받았던 한동훈 검사장은 2년 만에 무혐의 처분받았다. 앞에 언급한 유우성 사건의 검사 2명도 검찰은 증거 불충분이라는 무혐의로 불기소 처리했음은 물론이다. 공정성과 중립성이 의심받고, 제 식구 감싸기의 내로남불 등의 단어가 조직의 수식어로 계속 따라붙는 한 검찰은 영원히 사법 개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공감]최신 글 더 보기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