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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돈 냄새를 잘 맡았다. 안타깝게도 잘 맡기는 하지만 꼭 대박 직전에 발을 빼는 재주를 가진 것이 문제다. 일명 ‘마이너스의 손’인 아버지의 전설적인 행보는 명절 때마다 집안 단골 안줏거리기도 하다.

부모님은 1970년 충북 산골에서 충주 비료공장의 호황을 따라 충주로 이촌을 하였다. 그러다 1983년 비료공장이 문을 닫고 지역경기가 나빠져 새로운 삶을 고민했다. 선진 농업인 축산을 해보고 싶어 충남 천안에 젖소를 기를 땅을 구하고 가계약까지 진행하였으나 우유 파동이 주기적으로 일어나 영 마음이 불안하여 결국 포기하였다. 당시 목장 부지로 사려던 천안 땅이 약 3만3000㎡(1만평). 지금 그 위치에는 상전벽해가 일어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고 고속철이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 중랑천 인근에 셋방을 얻어 살았다. 연탄공장과 석재공장이 즐비해 빨래가 까매지곤 했다. 식구는 많은데 무주택자인 아버지는 1989년 노태우 정권의 200만호 주택건설 정책의 수혜자가 되었다. 덜컥 1기 신도시인 분당 아파트에 당첨된 것이다. 아버지 인생에 찾아온 가장 큰 행운이었다. 당시 견본주택을 보러 간다며 부모님은 상봉터미널에서 성남까지 가는 시외버스를 탔고, 겨우겨우 구경을 마치고 돌아와 신이 나서 통닭을 시켜 주었던가, 짜장면을 시켜 주었던가.

식구들은 분당 아파트에 아주 잠깐 살았다. 중학생인 나는 전학을 가지 못해 인근 작은집에 잠시 살았으니 아예 살아본 적도 없는 집이다. 그때 가본 분당은 그야말로 황무지에 아파트만 덩그러니 올라와 슈퍼마켓도 없어 성남 모란시장까지 나가 장을 봐야 했다. 무엇보다 연고도 없는 동네 아파트에 식구들이 들어앉으니 부모님은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중도금이니 뭐니 해서 가용 자원은 다 빨려들어간 상태였다. 건설 노동일과 함바집, 인근 경기도 남양주시(당시 미금시)의 시설 재배 일을 하던 부모님께 동네 연줄은 중요했다. 일자리를 서로 알아봐 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분당 아파트를 팔고 중랑구로 돌아왔다. 아파트를 팔려 할 때 버텨보자 했던 엄마에게 아버지는 아파트 땅은 내 것이 아닌 것이 영 불안하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땅 위에 지었던 2층 양옥마저 내놓고 말았다. 마침 집을 팔라는 업자들이 있어서 급하게 넘겼다. 그리고 몇 년 지나자 중화뉴타운지구로 지정되면서(현재 도시재생구역) 우리 집은 팔리자마자 값이 올랐다. 아버지는 며칠 자리보전을 해야만 했다.

그다음 옮겨간 곳은 경기도 광명시 외곽의 연립주택이었다. 손에 쥔 돈으로는 광명, 시흥, 부천의 연립주택 정도가 가능했다. 그때 광명으로 가자고 한 건 나였다. 이유는 시인 기형도가 살았던 곳이어서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이 동네에서 ‘기형도’라는 시인이 살았었다는 것만이 유일한 심정적 연고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광명에는 고속철과 경륜장이 들어서고 온갖 재개발로 몸살을 앓았다. 정을 붙일 만하던 때 동네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이 싸움에 휘말려야만 했다. 아버지는 지난한 과정을 겪고 흘러흘러 인천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거머쥐지 못한 행운들은 신기루일 뿐이다. 고급 정보를 물어다 줄 친·인척도 없고, 정보가 있다손 쳐도 투자를 할 돈은커녕 담보 잡힐 가산도 없는데 부동산 투자는 언감생심이다. 농지에 묘목을 박아놓고 때를 기다리는 것도 저들이 말하는 능력 맞다. 때 되면 호봉 올라가고 4대 보험 튼튼한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은 담보물보다도 더 높은 대출을 당길 수 있다. 행운은 저들에게만 따라붙는 전용 상품이다.

공무원 몇몇이 개발 호재를 예측하고 광명 땅을 사들였다 한다. 시인 기형도는 광명에서 ‘질투는 나의 힘’을 썼건만, 오늘 나의 질투는 아무런 힘이 없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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