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겨우 열흘 지났지만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청와대 이전부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과 주요 공약 추진방향 등 새로운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사들로 가득하다. 한편에서는 172석 여당에서 하루아침에 거대 야당이 되어버린 더불어민주당이 비대위 구성으로 여전히 시끄럽다. 그런데 달라진 세상 속에 국민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오미크론 치명률이 독감과 유사한 수준이라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규모가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60만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대선 직후, 언론에서는 투표 결과를 분석한 내용들이 소개되었다. 대부분의 기사가 20~30대 성별 득표율 차이를 통해 젠더 이슈를 다루거나 지역별 득표율 비교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지적하였다. 그러나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2017년과 2022년 대선에서 표심의 변화를 추적한 KBS 출구조사 심층 분석결과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을 뽑았던 사람 가운데 이번에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 사람은 72.0%에 그친 반면, 윤석열 후보를 선택한 비율은 25.1%였다. 왜 그랬을까?
아무리 이재명 후보가 대선 직후에 “내가 부족해서 진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후보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결국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다. 결과적으로 정부 출범 초기부터 강조한 적폐청산과 개혁과제조차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집중하는 동안 국민들의 삶을 안정시키고 나아지게 만드는 정책들은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조국 사태로 대표되는 내로남불이나 불공정과 더불어 최저임금과 부동산 정책 등의 실패는 국민들의 삶을 지키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중산층의 삶까지 흔들어버렸다. 게다가 코로나19 위기 속에 180석이라는 선물을 받고서도 힘겹게 버티는 소상공인이나 불안정한 노동자 등 국민들의 삶을 제대로 보살피거나 지원하지 않았다. 많은 국민들은 임기가 두 달도 남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년간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고 자화자찬만 생각난다고까지 말한다.
기준 중위소득으로는 공약 못 지켜
오래전 MBC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밤에>에는 당시 인기가 많았던 ‘TV 인생극장’이란 코너가 있었다. “그래 결심했어!”라는 유행어와 함께 누구나 살면서 마주하는 인생의 두 가지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내용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이번 대선은 5년 전 촛불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한 길에서 달라진 세상과 삶을 지켜보며 그 끝에서 마주친 두 갈림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5년 만에 다시 만난 두 갈림길에서 국민들은 이번에는 윤석열 당선인과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 길에서 국민들에게 어떤 삶이 펼쳐질지는, 인수위원회가 공약을 보다 발전시켜 국정과제를 확정하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를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기본소득과 같이 무차별적이고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보편적 현금 지원에 반대하며, 취약계층이 안심할 수 있도록 두껍게 지원하고 경제와 선순환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 복지를 강조했던 윤석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선별 지원을 강조한 윤석열 정부는 우선 코로나19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취약계층의 삶을 두껍게 보장하기 위해 소상공인 손실보상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지원제도 개편을 추진해야 한다. 관련 공약으로 제시된 내용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행 ‘기준 중위소득’을 ‘통계청 중위소득’과 동일하게 개편하는 것이다. 이것은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최저생계비가 아닌 중위소득으로 정책 기준을 개편했던 박근혜 정부가 못다 이룬 것을 윤석열 정부에서 완성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국민의힘 정강정책에 담긴 보수적 의미의 기본소득으로 윤희숙 전 의원이 발표했던 ‘빈곤제로 정책’과도 관련된다.
통계청 중위소득으로 개편이 우선
대부분의 정책에서 적용되는 기준 중위소득은 우리나라의 상대 빈곤율을 산출할 때 사용하는 통계청 중위소득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보다 3배나 높은 노인 빈곤층(2020년 기준 38.9%) 등 취약계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2인 가구 정책 지원기준으로는 현저히 낮다. 또한 1인 가구는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기준으로 상대 빈곤율이 약 50%에 이를 정도로 다인 가구에 비해 4배 가까이 높지만, 통계청이 산출한 중위소득 50%는 1인 가구의 경우 2020년 약 125만원(중위소득 30%는 약 75만원)인 반면, 현행 기준 중위소득 50%는 2020년 약 88만원(2022년 기준 약 97만원)에 불과하다. 특히 생계급여 기준인 현행 기준 중위소득 30%는 2020년 약 53만원(2022년 기준 약 58만원)으로 통계청 중위소득보다 22만원이나 낮은 기준으로 지원한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고는 공약처럼 생계급여 기준을 35%로 조정해도 2022년 기준으로 최대 68만원에 불과하다. 수급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차상위계층 역시 실질적으로는 상대 빈곤가구에 해당하고, 노인빈곤율 개선뿐만 아니라 취약계층의 삶이라도 두껍게 보장한다는 공약을 지킬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 정부의 역할보다는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 인상은 적극 추진한 반면, 2020년이 돼서야 뒤늦게 기준 중위소득을 미세 조정하는 데 그쳤다. 문재인 정부가 미뤄놓은 연금개혁과 더불어 취약계층이 안심하고 살도록 두껍게 지원하는 정책만이라도 제대로 해낸다면, 윤석열 정부는 적어도 소득보장에 있어서는 성공한 정부로 평가받을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극장에서 만약 다른 길을 선택했었다면 삶이 어떻게 전개되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틀림없는 사실은 인수위를 시작으로 5년 동안 윤석열 정부와 함께 가는 길이 어떠한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고, 그 끝에는 또 다른 두 갈림길이 있어 주권자인 국민들은 또다시 선택한다는 것이다. 결국 좋은 정책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만들어 다시 선택받는 것은 온전히 윤석열 정부가 하기 나름이다.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