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성소수자라면 자신이 어쩌다 성소수자가 되었는지 자문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남들과 다른 성별의 사람을 좋아하고 남자다움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동안 동성애와 성별 형성을 다룬 이론을 찾고 어설프게나마 살아온 날들을 헤집었다. 하지만 ‘나를 찾는 여행’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론들은 부정적인 환경에서 살아왔음을 애써 증언할 것을, 기억도 가물가물한 사건사고를 끄집어내 존재를 결박시켜 나를 설명하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문득 궁금했다. 왜 모든 가치 기준은 이성애인가. 이 여행은 나침반부터 잘못되지 않았나. 설령 살아온 궤적에 그림자가 있을지라도 이성애자라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물음을 끝도 없이 파내려간 시간이었다.

최근 유명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육아 예능방송에서 성별표현이 남들과 다른 아이를 진단했다. 그는 여성스럽게 행동하는 남자아이의 원인을 남성에 대한 긍정적 경험을 부족하게 만든 부모의 문제로 돌린다. 반대로 톰보이 성향이 강한 여자아이는 엄마와의 사이가 안 좋은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애석하게도 그의 진단은 내가 공부했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남다른 성별표현을 교정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무언가 결핍하고 불안정한 환경에서 살아왔으리란 ‘불행 서사’를 답습한다. 한데 아이의 생각은 물어보았나?

성소수자로 정체화하지 않더라도 성별표현을 강제로 교정하는 것은 ‘전환치료’로 분류된다. 이는 아동의 정신건강과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사회적 혐오의 논거로도 쓰이며 이성애 정상 가족과 다른 형태의 가족은 결함이 있다고 전제한다. 이미 미국 아동청소년 정신의학회 같은 전문가집단은 아이와 청소년의 다양한 성별표현이 병리적인 것이 아니며 여기에 개입해 강제로 교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힌다. 성별표현을 교정 대상으로 삼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대중에게 추종받는 전문가가 편견을 당연시하는 것은 여론을 호도하기 쉽다.

새삼 궁금했다. 그렇게 교정받으면 행복해질까? 묻고 싶은 얘기는 또 있다. 양육의 책임은 부모에게만 있나? 근래 부상하는 상담 프로그램은 명망 있는 전문가와 내담자의 이자관계를 고수하며 문제를 풀어간다. 하지만 양육을 가족의 책임으로 집중하는 구도는 부모가 어떤 노동과 주거환경 속에 아이를 키우며 그것이 고립된 가족 울타리에 재차 서로를 가두는지 묻지 않는다. 인권에 기반하는 포괄적 성교육이 자리 잡았다면 아이가 아니라 사회가 바뀌어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이 한 번이라도 나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양육의 무게를 가족에게 집중하는 프레임은 사회의 역할과 국가의 책임을 무시한 채 개인을 단속하고 훈계하기 바쁘다. 이는 ‘여성’에 ‘가족’을 굳이 붙여 국가 기구를 만들고 그마저 새로운 정부가 폐지를 공약하기에 이른 오늘의 단면은 아닐까.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 연대 활동가

[NGO 발언대]최신 글 더 보기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