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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얘 여기 다니면 안 돼요?”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가 다른 낯선 아이를 데려와서 불쑥 꺼낸 이야기다. 자기 친구인데 지역아동센터를 좀 다닐 수 있도록 해주란다. “그런데 여기 다니려면 돈이 얼마 들어요?” 제법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비용까지 묻는다. “돈은 안 내도 되는데, 대신 돌봄이 꼭 필요해야 하는데…” 하고 말을 꺼내니 “얘네 엄마, 아빠가 늦게 오실 때가 많은데요”라며 척척 답을 한다. 하지만 말없이 따라온 본인에게 물어보니 그 아이는 벌써 학교의 돌봄교실을 다니고 있단다. 그럼에도 이렇게 데리고 온 것을 보면 제 딴에는 친구의 어떤 점이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런 아이의 마음가짐이 예뻐서 한참을 혼자 웃었다.

그러고 보면 파랑새에 아이들이 모여드는 일이 때론 기적처럼 느껴진다. 아직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지역아동센터를 들어본 일조차 없고, 정부나 지자체 등을 통한 공식적인 홍보도 거의 없는데 어찌 알고 오는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심지어 파랑새는 여러 사정으로 건물 외부에 간판조차 없다. 알음알음 입소문만으로 지금의 아이들이 모여든 것이니 더욱 신통방통한 일이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아동 돌봄과 관련해 많은 점들이 개선된 게 사실이다. 학교를 통해 1년에 한두 번씩 공식적으로 각 가정에 돌봄 기관들이 안내되기도 하고, 돌봄이 필요한 아동을 위해 기관 간 연계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형식적인 제도 발전은 더욱 눈부셔서 서울시의 ‘우리동네키움포털’과 같은 온라인 돌봄 신청제도 역시 전국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포털을 통해 지역아동센터에 돌봄 신청을 해오는 가정은 거의 없다. ‘누구네 집 아이가 어디를 다니는 것 같아 물어보고 왔다’거나 ‘누구네 집 부모님이나 아이의 학교에서 여기가 좋다고 알려줘서 왔다’는 등 구전이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전달자들은 돌봄기관을 소개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필요한 아이가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역할을 하려고도 한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언제나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니다. 정작 아동 본인이나 가정에서 ‘돌봄은 필요 없다’고 거절하는 경우가 적잖기 때문이다. 특히 돌봄이 꼭 필요해 보이는 아동이나 가정에서 그런 거절을 해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더욱 안타깝다. 하지만 심각한 아동학대 등 사건·사고는 적절한 사회적 시선과 돌봄이 있다면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방과후 돌봄을 꼭 보호자의 신청에 맡기는 것만이 능사인가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금 우리는 돌봄이 필요하다고 하는 아동들에게도 충분한 돌봄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싫다고 하는 사람들까지 챙길 여유가 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사회적 돌봄은 필요 없다고 굳게 닫아 건 현관문 뒤에서 아동들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생각해보면, 이런 거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가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돌봄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과 책임성 있는 정책들이 뒤따를 때, 초등학교 1학년이 다른 1학년의 돌봄을 고민하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성태숙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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