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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를 놓고 고심하는 정부를 향해 “차라리 다 봉쇄하고 빨리 끝내자”는 극단적인 반응이 쏟아진다. 긴 불황을 견디기 힘든 소상공인들도 시위를 하고 소송을 걸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입장이야 다양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하루빨리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길’ 간절히 바란다는 것이다.

이런 틈새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이들을 발견하고 놀라는 중이다. 아이들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주변에서 속속 증언하는 바로는 꽤 여럿이다. 지인들과 온라인으로 송년회를 하는데 한 멤버가 말했다. “우리 애는 코로나가 안 끝났으면 좋겠대요. 졸업할 때까지 계속 온라인으로 하면 좋겠다네요.” “실은 우리 애도 그래요.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 갈 일이 없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높아졌대요.” “우리 조카도 좋아해요. 억지로 학원에 안 가도 된다고.” 여러 목격담이 쏟아지는 중에 중학교 교사인 멤버가 쐐기를 박는다. “우리 반에, 그런 애들 많아요.”

마음껏 뛰어놀고 싶고, 세상과 연결되고 싶다는 목소리만 듣다가 이건 또 새로운 세계였다. 어쩌면 비난이 두려워 함부로 발설하지 못한 다수의 속내인지도 모른다. 김현수의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에는 학교와 학원 붕괴를 소원으로 꼽는 청소년들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아이들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자유를 잃고, 통제와 억압의 시간을 견뎌온 터였다. 예기치 못한 팬데믹으로 인한 등교 안 함이 오히려 갇힌 시간의 해방구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학교와 학원이 멈추고, 집에 있는 자신을 24시간 감시할 수 없는 부모들이 생겨난 틈에 아이들은 숨통을 트고 있다. 그러니 “코로나 좋아” “안 끝났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그토록 해맑게 하는 아이들을 철없다고 탓할 수 있을까.

지난 주말 온라인으로 열린 청소년 축제에 초대받았다. 서울의 동북권역 마을배움터에서 일 년 동안 청소년들의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그 결과를 나누는 자리였다. 대부분 고등학생인 참가자들은 팬데믹 속에서 입시를 준비하는 틈틈이 인권을 연구하고, 그림책을 만들고, 베이킹을 하고, 단편영화를 찍었다. 그들의 활동은 감동적이었고 한편 안타까웠다. 그 정도의 활동을, 부모 몰래 하는 아이들도 꽤 있었기 때문이다. 자고로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이란 공부 말곤, 그 어떤 것도 해선 안 될 신분이다.

이 프로젝트는 공통적으로 ‘내가 누군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었다. 이 작은 시도가 무엇보다 좋은 진로 찾기라는 걸 모르는 어른들에게 이 활동은 그저 ‘쓸데없는 짓’에 불과할 것이다. 자신을 탐색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할 시간,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아갈 시간에 ‘죽은 듯이’ 공부만 해야 하는 것이 아이들의 현실이다. 살아 있는 생명이 생기를 감추며 ‘죽은 듯이’ 지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백신과 치료제 개발 소식이 들려온다. 어른들이 바라는 대로 팬데믹은 곧 끝나겠지만, 학교와 학원에 줄 서야 하는 아이들의 고통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들이 코로나19 종식을 바라지 않는 이유다.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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