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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내년도 기준중위소득 결정을 위한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생계급여소위원회가 열렸다. 해당 위원회가 25일 열리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 기준중위소득 인상안을 제출할 예정이어서 기준중위소득 인상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는 회의장 앞을 찾았다. 그러나 이들의 방문은 가로막혔다. 의견 전달을 허용해 달라는 청원에 돌아온 것은 경찰의 해산 명령이었다.

이렇게 회의장을 무작정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달리 의견을 전달할 통로가 없기 때문이다. 기준중위소득은 이듬해 전 국민의 복지 기준이 되는 중요한 결정이지만 보건복지부는 회의를 공개하지 않는다. 2013년 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회의장에 들어간 적이 있다. 의견서를 전달하고 바로 쫓겨났지만, 한 위원은 ‘아직도 저렇게 야만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냐’며 인상을 구겼다. 땡볕 아래 두 시간 남짓 기다린 뒤 들은 유일한 대답이었다.

9년이 지난 올해도 ‘야만’을 불사하고 회의장을 찾은 이유가 있다면 단 하나, 이 회의의 결정에 따라 한 해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부양의무자기준이나 까다로운 선정기준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조차 되지 못하는 사람들, 낮은 수급비로 겨우 한 달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이 겪는 문제는 너무 가볍게 취급당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가 담장을 넘는다면 설마 이렇게 결정하겠냐는 믿음도 있다. 의사결정의 모든 몫을 가로챈 우리 사회 엘리트와 재정당국에 대한 마지막 기대라고 해두자.

하지만 정말 그럴까.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서울 삼각지역에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분향소가 있지만, 정부는 장애인 복지 예산 지출을 늘리는 데 끔찍하게 인색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기에도 기업에 대한 지원은 이어진 반면, 영세 자영업자들은 대출 지원만으로 버텨야 했다. 인플레이션 위기는 어떤가. 윤석열 정부는 부자와 기업 감세 기조를 명확히 했지만, 노동자는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두 해간 코로나19를 이유로 기준중위소득 인상 반대를 외쳤던 기획재정부는 올해도 인플레이션 등을 이유로 기준중위소득 현실화를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인플레이션 시대에 복지지출을 줄이겠다는 재정당국의 결정은 고물가 위기 속에 가난한 이들이 먼저 쓰러지는 것을 방임하겠다는 야만 그 자체다.

2011년 미국 월가에서는 점거 운동이 벌어졌다. 금융위기 이후 도산하는 은행과 기업에는 대규모 공적자금을 지원하지만, 정작 사람을 살리는 것에 인색한 부조리가 빈곤과 불평등을 만든다고 선언했던 시민들은 ‘우리가 99%다’라고 외쳤다. 위기마다 더 약한 사람들이 스러진다면 살아남는 것은 누구인가? 기업이 아니라 시민들이 겪는 위기를 사회의 위기로 인식하는 정부가 필요하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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