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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불가침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긴 머리에 늘 검은색 옷을 입고 천 위에 단정한 필체로 “불가침”이라고 적어서 등판에 꿰매어 입고 다녔다. 입을 전혀 열지 않고 부대자루를 든 채 빈 병을 모으러 다녔다. 우리는 그녀를 발견하면 그 즉시 “불가침!”이라고 외치며 동네 끝까지 따라다녔다. 간혹 어르신들이 길을 막고 “불가침이 무슨 뜻이냐?”고 묻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것도 침범당하길 원치 않았으나 지나가는 곳마다 모든 관심이 그녀에게로 쏟아졌다. 불가침이란 글자를 등에 붙이지 않았다면 아무도 침범하지 않고 존재 자체를 몰랐을 텐데. 그러니 등에 짊어진 글자는 일종의 형벌과 같았다.
어릴 적엔 그녀가 무슨 죄를 저질렀길래 자기 자신을 투명한 감옥에 가둔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녀가 죄인이 아니라 어떤 폭력의 피해자였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등판에 다른 이가 짊어졌어야 할 형벌을 대신 짊어지고 다녔을 것이다. 원래부터 그녀의 것이 아니었기에 아무래도 지워지지 않는 투명하고도 무거운 죄.
심판받지 못한 죄는 계속 세상을 떠돈다. 그것을 가해자가 온전히 짊어지지 않으면 피해자가 대신 짊어진다. 가해자가 온전히 짊어진다 해도 피해자는 얼마간은 나눠서 짊어진다. 그 죄는 피해자의 삶 안에서 공 굴리듯 점점 커져서 피해자의 삶을 잠식한다. 피해자가 어릴수록 그 죄는 더 오랜 세월 동안 피해자의 삶을 갉아먹을 것이다. 그러니 피해자가 어릴수록 죄에는 가중치를 두는 게 마땅하다.
1분의 죄마다 감옥생활 100년 정도로 계산하는 게 마땅하겠다. 가해자가 감옥에서 보내야 할 시간이 2000년이 넘는다 해도 걱정할 것이 없다. 인류의 건축기술은 뛰어나고 로마 시대의 감옥 유적도 아직 세상에 남아있다.
‘정당한 처벌’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해보게 되는 시절이다. 나이 어린 수많은 피해자의 삶을 생각하면 그것은 과해도 언제나 모자라다.
<정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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