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서울시가 15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여성단체, 인권전문가, 법률전문가 등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피해 호소 직원’에 대한 2차 가해 차단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이 직원의 일상 복귀를 적극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도 처음으로 이번 사건과 피해자에 대해 직접 사과한 뒤 고인의 부재로 당 차원의 진상조사가 어려우니 서울시에서 사건 경위를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박 시장 사망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되지 않고 진상을 밝히게 됐다. 당연한 결론이다.
진상규명에서 밝혀야 할 의혹은 크게 3가지다. 우선 박 시장에 의한 성추행 전말과 피해자의 문제제기 후 서울시의 방조·무마 의혹, 그리고 박 시장 쪽으로 피소 사실이 유출된 경위다. 하나하나가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야 하는 중대 사안이다.
하지만 진상규명에 대해 벌써부터 회의적인 시선이 나온다. 우선 서울시가 꾸리는 민관합동조사단으로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피해자 법률대리인은 고소인이 피해 사실을 서울시에 여러 차례 호소했지만 소용 없었다고 했다. 당장 서울시의 조사 의지에 의구심이 든다. 서울시는 이날 기자회견에 ‘직원 인권침해 진상규명에 대한 서울시 입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 직원’이라는 표현으로 피해사실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서울시는 앞서 벌어진 다른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미온적으로 처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관합동조사단이 법적으로 강제조사할 권한이 없다는 점도 한계다. 진상규명에 필요한 통신내역 및 컴퓨터·휴대전화 파일 접근권이 없는 것은 크나큰 문제이다. 경찰이 박 시장의 휴대폰에 대한 디지털포렌식과 통신조회를 하고 있지만, 이는 사망 경위를 밝히는 데로 제한돼 있다. 이러니 직권조사 권한이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와, 경찰의 추가 수사, 국회의 국정조사가 거론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사건에 대한 의문의 여지 없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이를 토대로 한 재발 방지 대책이다. 서울시는 진상 조사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아직 모르겠다”거나 “민관합동조사단에서 규명할 부분”이라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엄정 조사 약속에 부합하지 않는 미덥지 못한 태도이다. 2년 전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이 서울시 본청과 산하기관 직원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직원 71%가 조직 내 강한 위계질서 때문에 성희롱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경고음은 이미 울리고 있었다. 지자체 중 가장 선진적이라는 서울시의 성범죄 예방과 대처 매뉴얼이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도 정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시민들은 피해자가 당한 일은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으며, 자신도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고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질 것이다.
'정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향의 눈] 100세 노병, ‘캡틴 톰’과 백선엽 장군 (0) | 2020.07.16 |
---|---|
[사설] 공수처 법정 출범일에 추천위조차 구성 못한 국회 (0) | 2020.07.16 |
[기고]21대 국회, 의원 행동강령부터 만들어라 (0) | 2020.07.15 |
[조호연 칼럼]지금 남북이 해야 할 일 (0) | 2020.07.15 |
[여적]정치인의 눈 수술 (0) | 2020.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