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02년 가을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출입기자가 됐다. 당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상반기 뜨거웠던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은 사그라들고 있었다. 정몽준 의원은 월드컵 열기를 등에 업고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반노무현 후보’ 성향 의원들은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를 만들었다. 집단 탈당 움직임이 가시화했다.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이던 이낙연 의원(이하 호칭 생략)이 10월24일 논평을 냈다.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보라.” 이낙연은 후일 술회했다. “단일화되면 다시 합쳐야 할 정치인들에게 심한 말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초보운전자를 위한 격언을 빗대어 탈당 움직임을 멈추게 하려 했다.”(<이낙연의 낮은 목소리>)
이낙연 하면 떠오르는 ‘제1 연관 검색어’는 ‘말’일 가능성이 크다. 그의 입에선 농담조차 허투루 나오는 법이 없다. 치열한 조탁(彫琢)을 거친다. 배배 꼬지 않아도, 톤을 높이지 않아도 울림이 있다.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10개월째 1위(한국갤럽 홈페이지 참조)를 지키는 데도 그의 말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런 이낙연이 실언을 했다. 지난 1일 국회에서 한 강연에서다. “인생에서 가장 크고 감동적인 변화는 소녀가 엄마로 변하는 그 순간이다. 남자들은 그런 걸 경험 못하기 때문에 나이를 먹어도 철이 안 든다. 중국의 중산층 산모들이 가진 로망 중 하나는 서울 강남에서 산후조리를 받는 거다. 가장 감동적인 변화 순간에 대접받으며 배려받으며 변화를 겪고 싶다는 건 당연한 욕구라 생각한다.” 모성을 상찬하고, 산후조리 산업이 또 하나의 한류로 부상한다는 이야기를 하려 했을 터다.
공인의 말은 화자의 의도보다 대중의 반응이 중요하다. 대중은, 특히 여성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요즘 비혼 여성이 많고, 결혼해도 아이를 안 낳는 경우도 흔한데…. 모두 철없는 건가요?”(22세 대학생) “산후조리는 로망이 아니에요. 아이를 낳은 여성이 건강을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지요.”(51세 주부) 이낙연은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의 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희생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며 사과했다.
이낙연은 지난 5월에도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경기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참사 유가족을 만난 자리에서다. 한 유족이 '(정부 측의) 대안을 갖고 왔느냐'고 묻자 “국회의원이 아니라 한 조문객으로 왔다"고 했다.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신분이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고통과 슬픔에 빠진 유족들에게 지나치게 냉정하게 군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그는 “수양 부족이다.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지난해 4월 강원 동해안 지역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당시 총리로서 현장을 찾은 이낙연은 수첩을 꺼내 ‘깨알 메모’를 했다. 이재민들에게 ‘혈압약을 챙겼느냐’며 살갑게 물었다. 타 버린 볍씨와 농기구도 무상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정치는 말을 매개로 이뤄진다. 정치인의 말은 그 자체로 정치행위다. 시민의 삶에 녹아들었을 때 정치인의 말은 힘이 커진다. 시민의 삶과 동떨어질 때, 정치인의 말은 길을 잃는다. 2020년 여의도의 이낙연과 2019년 강원도의 이낙연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다.
정치인은 대중을 잘 안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행사에 참석하고, 연설하고, 악수하는 일은 대중을 이해하는 것과 별개다. 열린 정치인이 되는 길은 역설적으로 ‘갇혀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세상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학습을 통해 스스로를 갱신할 때 정치인의 말은 다시 길을 찾고 힘을 얻는다.
지난해 12월 이낙연을 인터뷰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정치지도자로서의 약점을 물었다. “많다. 너무 많아서… 지도자급 정치인에게 필요한 게 두 가지라고 본다. 다수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 그리고 확실한 자기 세력. 제가 전자는 비교적 얻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후자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건 제 약점이다. 그리고 지식인 때를 다 벗지 못했다.”
이낙연이 오늘(7일)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대표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출마 선언 전날, 그는 권력형 성폭력으로 실형이 확정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모친 빈소를 찾았다. 인간적 정리는 이해하나, 공개 조문이 미칠 파장을 신중히 고려했어야 한다. 과연 그는 달라진 이낙연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낙연은 이낙연을 넘어설 수 있을까.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정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두율 칼럼]정치와 언어 (0) | 2020.07.07 |
---|---|
[여적]‘접시깨기’ 행정 (0) | 2020.07.07 |
[사설]성착취범 미국 송환 불허한 법원, 양형기준부터 마련하라 (0) | 2020.07.07 |
[사설]비건 방한, 북·미 협상 되살리기 출발점 돼야 (0) | 2020.07.07 |
[아침을 열며]삼성과 검찰개혁을 생각한다 (0) | 2020.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