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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부엌으로 가서 놀자. (중략)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자 그녀에게 시간을 주자.” ‘타타타’를 부른 김국환의 노래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 중 일부다. 1992년 12월 가요 톱10에도 들었던 노래다. 이 노래는 남편들도 부엌일을 함께하자는 말을 ‘접시를 깨자’고 표현했다. 서툴러서 접시를 좀 깨도 괜찮으니 설거지를 하자는 것이다. 점차 집안일에서 남녀 구분이 없어지고 있지만 이때만 해도 설거지하는 남편은 드물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정부 부처의 신년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설거지를 하다 보면 손도 베이고 그릇도 깨고 하는데 그릇 깨고 손 베일 것이 두려워 아예 설거지를 안 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감사원 감사에서도 일하다 실수하는 것은 용납할 수 있도록 하는 원칙을 세웠다고 밝혔다. 공직자들은 그릇 깨는 정도의 시행착오를 두려워 말고 적극적으로 일하라는 요청이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6일 총리실 적극행정 우수직원들에게 ‘적극행정 접시’를 수여했다. 정 총리는 지난 1월 취임사에서 “일하다 접시를 깨는 일은 인정할 수 있어도, 일하지 않아 접시에 먼지가 끼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고 했다. 적극적인 ‘접시깨기’ 행정을 주문한 것이다. 정 총리는 적극행정으로 공을 세우면 확실히 포상하겠다고 약속했고, 총리실은 특별승진 등 파격적 인센티브를 마련할 예정이다.

‘접시깨기’ 행정 주문이 이어지는 것은 공직자들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섣불리 새로운 일에 손을 댔다가 책임지기보다는 자리에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게 상책이라는 공직자들의 보신주의를 경계하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된장에 풋고추 박히듯 자리만 지키려는 공무원이 늘 수밖에 없다. 모든 공직자들에게 실패를 감수하는 벤처정신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부의 행정력이 발휘되려면 접시 깨고 손 베일 정도의 각오가 있는 공직자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이런 공직자들을 장려하고, 접시를 깨도 적극 보호해줘야 한다. 설거지 거리가 쌓여가는데 모두들 나 몰라라 하거나 접시 닦는 시늉만 한다면 집안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박영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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