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opinionX

프로필사진
  • 글쓰기
  • 관리
  • 태그
  • 방명록
  • RSS

opinionX

검색하기 폼
  • 분류 전체보기 (27389)
    • 정치 칼럼 (5589)
      • 정동칼럼 (236)
      • 에디터의 창 (22)
      • 장덕진 칼럼 (78)
      • 기자 칼럼, 기자메모 (307)
    • 일반 칼럼 (15308)
      • 세상읽기 (893)
      • 정동칼럼 (126)
      • 기자 칼럼, 기자메모 (241)
      • 시선 (288)
      • 詩想과 세상 (150)
      • 문화와 삶 (422)
      • 직설 (519)
      • 경향의 눈 (57)
      • 여적 (403)
      • 생각그림 (106)
      • 김홍표의 과학 한귀퉁이 (39)
      • 송혁기의 책상물림 (179)
      • 임의진의 시골편지 (457)
      • 정희진의 낯선사이 (113)
      • 이렇게 (476)
    • 주제별 (2655)
      • 픽션 (92)
      • 교육 (663)
      • 노동, 비정규직 (473)
      • IT 통신 (65)
      • 스포츠와 세상 (307)
      • 녹색세상 (224)
      • 환경과 에너지 (831)
    • =====지난 칼럼===== (3800)
      • 고병권의 묵묵 (26)
      • 금태섭의 모서리 (8)
      • 진중권의 돌직구 (10)
      • 신형철의 뉘앙스 (23)
      • 오창익의 인권수첩 (60)
      • 양승훈의 공론 공작소 (42)
      • 김산하의 야생학교 (46)
      • 이굴기의 꽃산 꽃글 (371)
      • 김웅의 덧뵈기 (6)
      • 김규항의 혁명은 안단테로 (59)
      • 김경의 트렌드 vs 클래식 (67)
      • 서민 칼럼 (94)
      • 강용주의 안아픈 사회 (6)
      •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56)
      • 경향시선 (338)
      • 작은 것이 아름답다 (52)
      • 핫 키워드 (27)
      • 지금 SNS에선 (107)
      • 송경동 칼럼 (29)
      • 알고 쓰는 말글 (202)
      • 2030콘서트 (74)
      • 김우창 칼럼 (22)
      • 김종철 칼럼 (49)
      • 김태일의 정치시평 (26)
      • 김호기의 정치시평 (18)
      • 이남주의 정치시평 (18)
      • 하승수의 틈 (44)
      • 하태훈의 법과 사회 (42)
      • 장은주의 정치시평 (17)
      • 김규항의 좌판 (30)
      • 김종휘의 횡단보도 (37)
      • 김종락의 마포스캔들 (36)
      • 고종석의 편지 (22)
      • 강명관의 심심한 책읽기 (51)
      • 강신주 칼럼 (50)
      • 가족이야기 (31)
      •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140)
      • 김형경의 뜨거운 의자 (34)
      • 나사못회전의 고전읽기 (53)
      • 사유와 성찰 (193)
      • 낮은 목소리로 (79)
      • 손호철 칼럼 (64)
      • 소소한 풍경 (11)
      • 생생 시사데이터 (31)
      • 이범의 진보가 진보하려면 (7)
      • 이택광 칼럼 (75)
      • 이상돈 칼럼 (27)
      • 이철희 칼럼 (22)
      • 이건의 소방이야기 (43)
      • 우석훈의 시민운동 몇어찌 (50)
      • 장덕진 칼럼 (4)
      • 조국 칼럼 (13)
      • 정도언의 마음읽기 (12)
      • 지금 논쟁 중 (78)
      • 배철현의 심연 (24)
      • 박범신의 논산일기 (12)
      • 박주민의 동분서주 (14)
      • 별별시선 (280)
      • 최장집 칼럼 (15)
      • 표창원 칼럼 (61)
      • 한기호의 다독다독 (104)
      • 함정임의 세상풍경 (60)
      •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19)
      • 한국, 소통합시다 (79)
  • 방명록

불평등한 관계 (1)
[기고]성폭력은 ‘구조’의 문제다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가 4년간이나 선수를 성폭행한 사건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놀랍고 참담하다는 탄식만 하기에는 선수들이 처한 인권 상황이 위중하다.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환호에 가려져 왔던 폭행으로 얼룩진 선수들의 일상은 피해 선수의 용기있는 ‘말하기’로 세상에 알려졌다. 체육계,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가 이 사건을 계기로 뼈저린 자성을 하고 두번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촘촘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그러려면 먼저 이 사건의 원인을 제대로 짚어야 한다. 이번 사건을 조재범이라는 한 개인의 일탈행동으로만 봐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 역시 누군가에게는 보통의 가족, 친구, 동료였을 것이다. 이제 그는 성폭력 피의자로서 수사와 재판 과정을 거쳐 진상규명과 함께 응당한 처벌을 받..

일반 칼럼 2019. 1. 14. 14:06
이전 1 다음
이전 다음
공지사항
  • [공지] 오피니언X 블로그 운영 중단 안내
  • 경향신문 온라인 여론 블로그 '오피니언X'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7   »
일 월 화 수 목 금 토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opyright© The Kyunghyang Shinmun, All rights reserved.

티스토리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