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입니다.” 1969년 7월20일, 전 세계인들은 흐린 화질로 전해지는 텔레비전 속 한 장면에 이목을 집중한다.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월면에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그가 남긴 이 한마디는 인류가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지구에서 우주로 확장했음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달 착륙을 하겠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1961년 대중 연설부터 실제 실행까지 10년도 채 걸리지 않아 미국이 ‘일’을 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폴로 계획 덕분이었다. 국가 자원을 하나로 묶은 아폴로 계획이 우직하게 추진되지 않았더라면 인간의 달 착륙은 훨씬 이후의 일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는 아폴로 계획을 추진해야 할..
여성가족부 폐지가 가시화됐다. 지난 6일 공식 발표된 정부조직 개편안을 통해서다.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정부조직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여가부는 21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여가부 기능 축소, 성평등 정책 후퇴 등 여러 비판 속에서도 흥미로운 대목은 정부가 여가부 폐지를 계기로 여성정책을 인구정책으로 전환하려 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맡고 있는 인구·아동·노인 업무에 여가부의 청소년·가족 업무를 더해 생애주기별 정책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초저출산과 고령화에 대비할 것”이라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설명과 “생애주기별 정책을 추진하는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는 인구문제 해결에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김현숙 여가부 장관의 발언은 이런 지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행..
‘졌잘싸’라는 말이 있다. “졌지만 잘 싸웠다”의 줄임말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패했으나 좋은 내용과 훌륭한 매너를 보인 선수, 팀을 격려할 때 쓰인다. 지난해 도쿄 올림픽에서 자신을 이긴 중국 선수에 ‘엄지척’한 이대훈(태권도), 전력 열세에도 4강까지 오른 여자배구, 세계랭킹 3위 스페인에 4점차로 석패한 여자농구,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좋은 기록과 뛰어난 플레이를 보인 황선우(수영)·우상혁(육상)·신유빈(탁구). 그들을 우리는 “졌잘싸”라는 말로 위로하고 격려했다. ‘졌잘싸’를 들을 수 있는 조건은 크게 두 가지다. 꺾지는 못해도 당당히 상대할 만한 ‘뛰어난 경기력’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최선을 다한 ‘철저한 준비 상태’다. 경기력은 결과, 준비는 과정이다. 경기력이 아무리 좋아도 나보다 강한 상..
“이건 학생 안전의 문제지, 또 남녀를 나눠 젠더 갈등을 증폭하는 건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에 대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의 말이다. 이 발언을 담은 인터뷰가 보도되자 “성차별 문제를 외면한다” “성폭력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장관은 해당 사건을 구조적 문제로 보지 않는 것이냐’는 취지의 기자의 질의에 여가부는 지난 26일 ‘성별 대결 구도의 문제로 바라보지 말라는 취지’라고 짧게 답변했다. 김 장관이 ‘구조적 성차별 유무’를 묻는 질문에 즉답을 피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국회 인사청문회 등에서도 ‘구조적 성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질문에 “법과 제도는 상당부분 개선됐으나, 노동시장의 불공정성,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문제 등을 해소하는 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오후 또 기자실을 찾았다. 취임 이후 벌써 네 번째 방문이다. 특별한 용건은 없지만 기자들과 더 자주 소통하겠다는 취지다. 추 부총리는 취임 후 두 달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출입기자단과 오찬을 함께했다. 더 격의 없이 기자들과 소통하겠다는 이유로 막내 기자들의 저녁 모임에 ‘깜짝 방문’을 한 적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단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매일 출근길 ‘약식문답(도어스테핑)’을 하는 것과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그러나 윗선의 소통의지가 아랫선까지는 아직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다. 지난 24일 기재부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법인세 인하에 따른 ‘낙수효과’와 관련해 기재부 발표상 수치가 통계청에서 확인한 수치와 달라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취지를 설명..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박지현)이 지난 1월 이후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아마도 이것이었을 것이다. “정치권에서 이용만 당하는 것 아닐까?” 요즘 민주당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제발 박지현을 이용이라도 (잘)해라.” 민주당이 수사권을 몰아주지 못해 안달 난 경찰이 디지털성범죄 수사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을 때 박지현은 동료 한 명과 함께 n번방의 실체를 추적해 세상에 알렸다. 디지털성범죄 수사는 박지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박지현은 견고했던 벽에 구멍을 내고 길을 만든 존재다. 많은 여성들이 “박지현에게 빚졌다”며 정치를 시작한 그를 응원한 것은 이런 이유다. 특히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하고 “여성가족부 폐지”가 주요 정책인 정권을 눈앞에 둔 여성들에게 박지현은 그나마 ..
정치를 잘 모르지만 이렇게 대선이 가까워진 시점엔 정치얘기가 하고 싶어진다. 대선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투표에서도 가장 큰 이벤트다. 투표권 유무와 관계없이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관심을 가지고 그 과정과 결과를 함께해야 한다. 누군가는 염려하는 정치에 대한 ‘과도한 관심’도 대선 시국에는 미덕이다.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이 땅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고,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데는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열망과 관심이 큰 몫을 했다. 대선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상징한다. 이번 대선을 ‘비호감 대선’이라고도 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 조사’가 단골메뉴가 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동의하지 않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유권자 모두의 지지를 ..
철제 폴리스라인이 넘어질 만큼 강한 비바람이 분 30일 오후에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국회 앞에 섰다. 땡볕이든 폭우가 쏟아지든 거의 매주 국회 앞에 모인다. 이들은 7개월째 같은 이야기를 한다. ‘각 정당은 입장을 밝히고 법 제정 절차에 들어가라’는 것이다. 명분은 충분하다. 법안 4개가 제출돼 있고 국민동의청원은 10만을 넘겼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국민 88.5%가 법에 찬성한다고 했다. 부족한 건 국회의 의지뿐이다. 제출된 법안은 논의되지 않았고, 청원 심사기한은 2024년으로 밀렸다. 소관부서가 많고 법리가 복잡해 ‘정리’가 필요하다면 논의에 박차를 가하면 된다. 하지만 169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마지못해 마련한 첫 토론회는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에 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