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리영희 선생님께서 생전에 백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날도 무더운 여름이고 지금보다 몸무게도 몇 근 적게 나가고 해서 젊음의 만용으로 깡총 짧은 핫팬츠를 입고 병문안을 갔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녹즙 배달을 하고 있었는데, 몸에 좋은 샘플을 가져가서 빨대에 꽂아 드리면 20㎖짜리를 몇 개씩 잡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날은 내 바지를 보자마자 선생님의 흰 눈썹이 버럭 하고 찌푸려졌다. 원래도 말씀이 많은 분은 아니었다. 그래도 문병을 갈 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곤 했다. 반야바라밀이라던가 문화대혁명의 진정한 의미라던가 NLL의 정확한 정의 같은 거였다. 하지만 그날 선생님의 말씀은 달랐다. “여기는 생명을 다루는 곳인데 그 옷차림이 뭐야!” “아니 그러니까 다들 힘 좀 내시라고…..
영화 을 봤으니 나도 이제 ‘천만 대열’에 확실히 합류한 셈이다. 고단했던 삶의 스틸들은 재미와 눈물이라기보다 여전히 진행되는 오늘의 이야기였다. 그것은 암울했던 지난날의 가난과 이념, 희로애락들이 표정만 달리할 뿐 지금껏 우리 앞에 서성대고 있다는 답답함에 대한 반항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의 잔상과 교훈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피란지 천막학교에서 처음 만난 ‘덕수’와 ‘달구’의 우정이 파독 광부 시절은 물론 베트남전쟁 그리고 고집스러운 노인이 될 때까지 껌딱지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일종의 ‘부러움’이었다. 나이를 먹고 일상에 떠밀리다보면 우린 때로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산다. 그 가운데 하나가 친구, 우정이다. 이웃이 사촌 되고, 페이스북이 우정의 무대가 되며, 직장동료가 친구가 되다보니 때로 ‘된..
만약 도시 중심가 입시학원 건물에 비행청소년을 교육하는 청소년비행예방센터가 입주하려 한다면 지역주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혐오시설로 규정한 후 불량한 학생들로부터 자녀와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해 결사반대를 할 것이고, 결국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할 것이다. 다시 말해 공교육에서 일탈한 아이들이 대안교육의 기회를 얻어 건전한 청소년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과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한 고비용의 학교 밖 사교육은 공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가 사는 동네 집값이 떨어지면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데 지장이 있으니, 우리 집 뒷마당에서 나가 달라는 말이다. 방과후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가정에서 자란,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하는 평범한 학생들이다. 반면 학..
남녀공학 고등학교 1학년 학생 7명이 학습동아리 ‘탁상공론’(卓上共論)을 만들어 우리 고전을 번역해 보고자 했다 한다. 이들은 등 관련 TV 다큐멘터리를 섭렵하고 ‘승정원일기’를 소개한 대중교양서 (喉舌)도 읽어보았다 했다. 신통방통한 녀석들이다. 지도교사가 한국고전번역원에 견학과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느냐는 전화를 했다. 불감청고소원. 원장님께 질문지를 미리 보내왔다. 조선시대 기록문화가 발달한 이유, 고전번역원의 역할, 고전 번역가가 되려면, 고전 공부의 비결, 구결(口訣)의 원리 등이었다. 고전번역교육원 홈페이지의 논어(論語) 동영상을 보면서, 학민출판사 발간 영인본을 복사해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번역을 해본다는 것이다. 수백 장의 한자카드 묶음도 보여줬다. 번역팀장에게 보낸 질문지는 점입가경. 이..
직장인은 한 번쯤 자신에게 맡겨진 업무가 자신의 능력에 합당하기 때문에 맡겨진 것인지, 또는 조직 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만큼 자신의 능력이 되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승진한 경우, 스스로 승진할 만한 능력이 있는지 스스로 의문을 가진 적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1978년 미국 심리학자 폴린 클렌스와 수잔 아임스는 ‘사기꾼 증후군’(imposter syndrome), 일명 가면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이러한 심리 현상을 연구했다. 이것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을 때 또는 자신이 만든 업적을 능력이 있어 달성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았다거나 타이밍이 좋았다고 여기는 등 자신의 성공 능력에 확신을 갖지..
‘사업가와 어부’라는 픽션 같은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한 사업가가 치열한 삶의 현장을 떠나 멕시코만 고즈넉한 어촌에서 어부 한 사람을 만난다. 사업가의 눈에 비친 그는 오전 내내 바다에 나갔다가 서너 마리 고기만을 잡아온다. 아이들과 놀고 아내랑 낮잠을 자며, 저녁에는 마을을 어슬렁거리는 어부의 일상이 답답함을 넘어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하버드대 MBA 출신임을 밝히고 어부가 부자 되는 거대한 계획을 늘어놓는다. 재테크에다 영리한 라이프컨설팅을 한참 듣던 어부는 그렇게 돈을 벌어 은퇴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러자 사업가는 고즈넉한 해안가 마을에 집을 짓고, 늘어지게 자고, 손주들과도 놀고 아내랑 산책을 하고, 기타 치고 노래도 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자 어부는 “..
지난해 4월, 출판사 일로 중국에 출장을 가 있을 때였다.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전화를 하셨다. 이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공석인 이장직을 맡아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어르신, 이장이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이장을 맡아요?” “한 달에 한 번 이장협의회에 가서 잘 듣고, 마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데 뭘 그래요.” 이장협의회에만 잘 나가면 된다는 어르신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은 건 아니지만, 뭣에 홀린 듯 나는 한 달 후에 이장이 됐다. 사람일 참 알 수 없다. 내가 벌인 일조차 내가 원해서 한 것인지, 아닌지 아리송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얼떨결에 이장이 된 후 제일 먼저 나를 놀라게 한 건 새벽 6, 7시부터 울어대는 전화벨 소리였다. “물이 안 나와요!” “..
삐걱 소리 나는 대문을 열고 반질하게 닦여 있는 마당을 지나 대청에 올라서면 시집올 때 가마 안이 훤했다는 외할머니께서 웃으며 반겨주셨다. 배우처럼 잘생긴 외삼촌은 해외 근무를 나가 계셨는데 가끔씩 미제 노란 연필을 다스로 보내주셨다. 연필심이 단단해 글씨가 깔끔하게 써져 숙제를 해가면 ‘참 잘했어요’ 바둑이 도장을 받았다. 뭐든 귀하던 시절이어서 연필 한 자루도 지금의 골프채 대접을 받던 때였다. 다들 출가하고 막내 이모만 인근에 있는 학교에 나가고 있는 단출한 생활이어서 방학 때만 되면 외갓집으로 갔다. 말씀이 적지만 미소가 예쁘셨던 외할머니와 어린 나의 수난이 해가 지면 시작됐다. 외할아버지의 주사 때문이다. 낮에는 점잖다가 저녁이 되면 ‘지킬박사’와 ‘변사또’처럼 변해서 주문을 하셨다. 갈치토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