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취임 7개월이 되었다. 대통령실 이전 빼고 도대체 뭘 했냐는 말도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70%쯤의 국민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방식이나 태도 등을 반대하지만, 그는 오로지 국민을 위해서라며 과감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앞으로만 나가는 저돌적 스타일이다. 그러는 게 자신과 여당은 물론 국민에게도 좋지 않다는 지적이 많지만, 좌고우면 없는 진격을 거듭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앞으로 나가는 방식은 대개 ‘싸움’이다. 매일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 주로 직접 싸우지만, 가끔 대리인을 내세우기도 한다. 적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전술의 기본쯤은 간단히 무시한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싸움처럼 보인다. 대통령의 싸움은 안팎을 가리지 않았다.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를 이끈 이준석 대표는 ‘내부 총질이..
영국 정치가 수상하다. 지난 20일 리즈 트러스 총리가 취임 44일 만에 사임하고 25일 리시 수낵 신임 총리가 취임했다. 수낵 총리는 인도계 이주민 3세로 영국 역사상 최초의 비백인 출신 총리라는 점에서 주목받는 대상이 됐다. 트러스 전 총리도 영국 역사상 최초의 40대 여성 총리로서 30대 중반부터 12년에 걸쳐 환경장관, 재무차관, 교육장관, 국제통상장관, 법무장관, 외무장관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커다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트러스 전 총리는 영국 역사상 최단기 총리에다 정책 실패로 인한 사임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2016년 브렉시트 문제로 물러난 캐머런 총리 이후 6년 동안 다섯 번째 총리 교체가 이어져 ‘총리 재임 기간이 양상추 유통기한보다 짧다’는 농담을 현실화한 인물로 거론되기도 한다..
우리는 바로 이웃과 싸우고 불신하면서도 일상생활에 파묻혀 짐짓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내지만, 상대방이 계속 화를 가라앉히지 않고 있어서 언제 또 나에게 해코지를 할지 몰라 걱정하면서 지내는 경우가 있다. 상황을 방치해 두면 시간이 흐를수록 관계가 악화되기 십상이고, 이웃과 접촉과 대화가 끊어져 있어서 상대방이 어떤 심리와 이유로 내게 언제 어떤 식으로 어떤 위협을 가할지 알 수가 없다. 요새 남북관계를 위의 경우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강화와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위협이 고통스럽고 화가 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군사적 대결, 그것도 핵전쟁 위협을 고조시키는 정책 일변도는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위기 상황의 지속적인 방치도 답이 아님을 안다. 그렇다면, 무엇..
한동훈은 ‘조선 제일의 검’으로 불렸다. 기분 나쁘지 않을 별명이다. 유능한 검사라는 뜻이니 말이다. 윤석열은 한 수 위였다. 그가 ‘강호 무림의 최고 칼잡이’라는 것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칼잡이의 지존이라는 표현이 좀 민망하게 들릴 수 있겠다 싶은데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것 역시 이름난 검사에게 붙이는 상찬(賞讚)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군대, 경찰 등과 함께 폭력을 합법적으로 행사하는 국가기구다. 국민의 재산권을 박탈하거나 신체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권력기관이다. 그래서 검사 자신들은 칼을 쓰는 무사라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윤석열과 그의 수하 한동훈은 자기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고수인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두 무림 고수가 중원으로 나와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되면서부터다. 그..
15년 넘게 출퇴근길에 청와대 앞길을 지나다녔기에 대통령 관저 이전과 청와대 개방에 대해 나름의 소회가 있었는데, 이제야 청와대를 관람했다. 청와대 주변길과 근처 동네는 산 아래 터를 잡은, 오래된 서울 특유의 지세를 보여준다. 도심 한가운데지만 비교적 고즈넉하고 산록과 계곡에 기댄 의외의 장소가 많다. 계절에 따른 숲과 나무의 변화도 잘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청와대 근처는 엄혹하고 어두운 현대사의 기억이 깃든 곳들도 많다. 4·19 때 이승만의 부하들이 시민·학생들에게 총을 쏴 100명 넘게 죽고 상하게 만든 곳, 북에서 온 김신조부대와 군경이 교전하여 피 흘린 곳, 그리고 박정희가 부하의 총을 맞고 죽은 궁정동은 흔적만 남았는데도 섬찟했다. 그리고 지난 10여년 사이에 청와대 앞길과 주변 동네의 분..
강대국에서 태어나면 당장 유복하고 누릴 것이 많겠지만, 그렇다고 약소국에서 태어난 이들이 받는 복이 더 적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기에 따라서는 특별한 복을 받는다. 약소국 사람들과 지도자들은 강대국 세상에서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 궁리하고 노력함으로써 국제정치의 본령을 더 잘 알게 되고 외부세계의 충격에 대처하면서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략적 능력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질서는 기본적으로 강대국 질서이다. 이러한 질서 속에서 약소국의 생존전략의 기본 가치는 ‘자주성’이다. 내 땅과 나라, 역사에 대한 확고한 주인의식을 갖고, 자신과 후손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미래 비전과 목표를 명확히 하면서, 현재를 ‘미래를 품은’ 역동적인 현재로 재구성하여 현실의 난관을 극복하면서 미래의 꿈을 실현해 나가..
여태껏 볼 수 없던 유형의 장관이 출현했다. 자신감이 넘치고, 국회에선 국회의원들과 다툼도 피하지 않는다. 자잘한 말싸움에서조차 지지 않으려 한다. 되레 훈계하거나 윽박지르는 언동도 자주 보인다. 좋게 보면 자신감이나 달리 보면 기본적 예의도 갖추지 않은 무례한 모습이다. 이렇게 당당한 ‘일국의 국무위원’은 좀체 볼 수 없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늘 당당한 모습이다. 론스타에 수천억원을 물어주게 되자, 한 장관은 이의신청을 검토할 것이고,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했다. 송기호 변호사가 ‘정동 칼럼’에서 지적했듯,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국민 세금으로 론스타에 막대한 돈을 물어주게 만든 관련 공무원들의 배임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한 장관이 이쪽저쪽 상관없이 박수를 받았던 일도 있었다. ..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지난 주말 대구에 있는 ‘김광석거리’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가 영민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보니 담대하기까지 하다. 그는 돌아갈 다리를 불태워버린 것 같다. 그간 국민의힘 내부 갈등의 쟁점은 ‘당대표의 품행이 문제인가, 아니면 당 주류의 독선이 문제인가?’라는 것이었다. 이준석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와 같은 그간의 쟁론을 다른 국면으로 바꾸려는 것 같았다. 그는 지루해지고 점점 더 민망해지고 있는 국민의힘 내부 권력투쟁을 ‘가치’투쟁으로 끌어올려 윤석열 대통령과 맞서고자 한다. 그는 윤 대통령이 취임사를 비롯한 각종 연설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자유라는 가치를 환기하며 그것을 싸움의 고리로 걸고 나섰다. 그는 “젊은 세대가 원하는 것은 자유입니다”라고 못을 박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