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 | 서울대 교수·정신분석 세상이 어지럽다. 사람들은 이득을 취하기 위해 할 일, 안 할 일을 다 한다. 정치는 혼란스럽고 범죄는 흉포해졌다. 올해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두 가지다. 첫째, 일상화된 성폭력 등 중범죄의 예방 및 해결이다. 문만 열어 놓으면 남의 집에 들어오고, 들어오기만 하면 죽이거나 욕보이는 세상이 되었음에도 대처방법이 미지근하다. 세금으로 유지되는지를 모르는지 경찰, 검찰, 법원은 잠에서 덜 깬 것 같다. 정치인들도 옆집이 다 탄 뒤에야 무심한 이웃 사람처럼 “불이야!” 외친다. “죽을죄를 지었으니 죽여주소서”라는 대사를 써준 텔레비전 드라마 작가들에게도 오늘의 사태에 약간의 책임이 있을까? 현실에서는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범인들은 술이나 사회적 불평등을 서둘러..
정도언 | 서울대 교수·정신분석 검은 색안경으로 감시의 눈빛을 감추는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검은 색안경을 멋 내기 위해서도 아무나 낮밤으로 쓴다. 낮에는 감기 환자, 밤에는 도둑이나 강도 정도였는데 요즘 산책로에서는 햇빛과 먼지를 피하기 위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자신의 정체를 가리는 일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물리적 공간을 넘어 사이버 공간으로 확대됐다. 대한민국의 사이버 공간에서도 “감출 수 없게 할 것인가, 감추게 놓아둘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의 논쟁이 이루어진 바 있고, 2007년에는 사회적 폐해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인터넷 실명제’(이하 실명제)가 도입됐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이 제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제 갈망하던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고, 지난 5년간..
정도언 | 서울대 교수·정신분석 말이라는 것이 묘하다. 멋있게 할 수도, 천하게 할 수도 있다. 말에서 사람의 품격이 배어 나오니 말을 제대로 잘하는 것은 중요하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 중 하나가 정치인일 것이다. 정치인은 말로 자신을 유권자들에게 알린다. 단순무식하게 보면 가장 유능한 정치인은 어떤 사람일까? 덕이 있는 사람일까, 정직한 사람일까, 화장실에 앉아서도 나라의 장래만을 걱정하는 사람일까? 유감스럽게도 말로 사람들을 아주 잘 속이는 사람일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말에는 욕(辱·욕설)이 포함된다. 욕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는 언어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욕하는 행위는 인간 본성의 일부일 것이다. 욕에는 카타르시스 효과가 있다. 욕 몇 마디로 마음에 맺힌 ..
정도언 | 서울대 교수·정신분석 요새 밤잠을 설치며 런던올림픽 게임 중계를 보며 환호하기도, 낙담하기도 하지만 올해 대한민국 최대의 이슈는 차기 대통령을 잘 뽑는 일이다. 그 일이야말로 국민 모두가 밤잠을 설치며 현명한 선택을 위해 애간장을 녹여야 할, 후손들의 장래가 걸린 최대 고민거리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나라의 힘이 아주 강하지 않고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스포츠 정신을 강조하는 올림픽에서조차 정당한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현실이 자꾸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들의 자질과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 중 모든 사람이 합의할 수 있는 전제조건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대한민국의 승리를 이끌 진정한 프로를 뽑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후보들 중에서 프로정신이 부족한 사람을 솎아내는 일을 대선 과정에서 우..
정도언 |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분석 런던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이 경쟁해서 올릴 성과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공장에서는 오늘도 직원들이 세계 일류 제품들을 만들려고 땀 흘리고 있다. 오늘 밤에도 세계 유수 학술지에 발표할 논문을 위해 대한민국 연구원들은 밤새 실험에 매달릴 것이다. 모두 경쟁이다. 고통스럽지만 사람들은 경쟁에 뛰어들고 때론 즐긴다. 남보다 잘할 수 있으면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성취를 통한 우월감은 개인이 노력해 이루는 결과물이지 국가가 제공해 줄 순 없다. 경쟁 없는 사회가 진정한 복지사회이자 낙원일까? 경쟁이 없는 사회가 아니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사회가 아마도 우리가 꿈꾸는 복지사회나 낙원에 더 가까울 것이다. 유인원 조상 이래 문명을 세워 지금까지 ..
정도언|서울대 교수·정신분석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존 볼비의 업적은 ‘애착’에 관한 연구이다. ‘애착’이란 아이가 자기를 돌보고 키워주는 사람과 지속적이고 정서적이며, 행동적인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현상을 말한다. 애착이 잘 형성되게 하기 위해서는 아기가 원할 때 엄마 또는 같은 사람이 늘 곁에 있으면서 적절한 반응을 제때에 보여야 한다. 배가 고프면 먹여주고 아프면 안아주고 달래주어야 한다. 그러면 언제나 도움이 되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믿음이 아기에게 생긴다. 그래야 아기가 외부 세계를 탐험할 호기심과 의욕을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애착이론은 지금 발달심리학적 연구뿐 아니라 소아, 청소년, 성인의 정신적 문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아이들에 ..
정도언 | 서울대 교수·정신분석 조용필씨나 이미자씨가 대중가요 분야에 세운 업적이 대단하지만 국내에 있을 때 그들의 노래를 듣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미국 고속도로에서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찔끔 흐른다. 유럽의 거리에서 국내 대기업의 광고판을 보면 헤어진 가족을 만난 것 같은 반가운 기분이 든다. 외국에서 잠시 잊고 있던 ‘우리나라’의 재발견이 작은 감동을 준 것이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말들을 한다. 방송국 스튜디오 창에 ‘우리나라(O), 저희 나라(X)’라고 쓴 큰 쪽지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출연자 중에 그만큼 우리나라를 본의 아니게 낮추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이라면 때로는 남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국가는 함..
정도언 | 서울대 교수·정신분석 혀는 말한다. 눈은 본다. 귀는 듣는다. 세 치 혀로 못할 말이 없다. 두 눈으로는 세상을 본다. 두 귀로는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다. 그 모든 것의 뒤에는 마음이 있다. 혀는 마음에 담은 것을 이야기하기 마련이다. 술 먹은 상태에서는 평소 꺼리던 솔직한 이야기가 혀끝에 담겨 나온다. 취중진담(醉中眞談)이다. 술의 영향으로 긴장이 풀어져서이다. 맨 정신으로 했다가는 큰일 날 이야기를 술 핑계로 풀어낼 수도 있겠다. 눈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이지만 넓은지, 깊은지, 흐려져 있는 창인지는 각자가 눈을 가꾸고 다듬은 수준에 따라 다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본 것은 의심할 필요 없는 진실의 전부라고 믿는다. 사람들은 눈 A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