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한 아파트. 주민 대상으로 투표를 진행했다. 공식 안건은 경비원 근무 시간 단축.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경비원 인건비 삭감이다. 사정은 이렇다. 지금까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주간 근무제를 시행해 왔다. 총 12시간 중 점심 2시간, 저녁 2시간 무급 휴식 시간이다. 이후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야간 및 심야 근무를 한다. 심야 시간 중 4시간은 무급 휴식 시간이다. 총 20명의 경비원이 24시간 중 무급 휴식 시간 8시간을 제외하고 16시간 교대로 일한다. 문제는 심야 근무다. 경비원 휴게실에서 5인이 돌아가며 순찰을 하는데, 입주민은 경비원이 근무하고 있지 않다고 인지하고 있다. 어차피 인지도 안 되는 심야 근무를 유지할 필요가 없으니 이참에 폐지하자는 것이 골자다. 이렇..
2017년 5월25일 영국 맨체스터의 한 광장에 시민들이 모였다. 어딘가 슬픈 표정을 한 이들은 사흘 전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장에서 일어난 테러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1분간 침묵했다. 1분의 침묵이 끝나자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한 여성이 맨체스터 출신 록밴드 ‘오아시스’의 ‘화내며 뒤돌아보지 마세요’(Don’t look back in anger)를 조용히 읊조렸다. 그가 20초가량 노래를 부르자 몇몇이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따라불렀고, 1분쯤 지나자 광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처음 노래를 시작한 리디아 번스마이어 롤로는 지난 사흘간 머릿속에 떠올랐던 노래를 불렀을 뿐이라며, 사람들이 따라부르기 시작했을 때 소름이 돋았다..
조두순이 출소한다는 소식을 듣고 국민들은 불안해했다. 그리고 두려워했다. 그러자 정부는 여러 정책을 쏟아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뒤 이번엔 조두순이 현재 거주지에서 딴 곳으로 이사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사 지역 주민들이 결사반대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반복되어야 하나? 더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조두순보다 심각한 성범죄자가 오늘도 출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지역 주민들의 분노는 정부 대책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정당한 분노이고, 지역 주민들의 불안 또한 내 주변 가족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합리적인 불안이다. 이러한 분노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답을 제시하여야 한다. 답은 ‘어떻게’라는 질문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왜’..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는 소망이 재난인가.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이 ‘사회적 재난’이라며 중대본을 꾸렸다. 정부의 사고회로를 도통 알 수가 없다. 화주업체 재산의 안전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를 포함한 모두의 안전을 위해 정부가 먼저 확대해야 할 제도다. 화물노동자가 화물을 실어나르는 덕분에 돈을 버는 화주업체가 마땅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모든 게 거꾸로다. 정부는 ‘불법파업’으로부터 ‘법과 원칙’을 지키는 역할을 자청했다. 화물연대 파업을 ‘불법과 범죄’로 만들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모로 가도 불법이기만 하면 된다는 듯 이유가 계속 바뀐다. 화물기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이므로 파업할 권리가 없어 불법, 개인사업자는 영업하지 않을 자유..
왜 국가는 직업계고 현장학습제도를 포기 못할까. 문제가 많다면 개선의지는 있는지 모르겠다. 청소년들이 위험한 환경에서 목숨을 잃고 있는데도 말이다. 일터에서의 존엄성은 고사하고 차별 및 부당대우에도 적절한 권리구제 수단도 없다. 현장실습생의 신분은 학생이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노동자와 유사한 일을 수행한다. 그렇다 보니 학생이 일을 하는지 일하는 학생인지 구분도 힘들 정도다. 직업계고 현장실습은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그리고 일반고 직업반 학생이 참여한다. 직업교육이 청소년의 학습권보다 강조되면서 피해가 적지 않다. 인문교육 미흡, 진학 결정의 정보 부족, 노동권·건강권 침해 등이 언급된다. 2011년 A자동차 공장의 실습생 뇌출혈부터 2021년 여수 요트업체 실습생 사망사건까지. 지난 10년 동안 실..
서울 신촌에서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던 가난한 이의 죽음이 또다시 발견되었다. 집에는 연체된 고지서와 빈 쌀 포대가 있었다고 한다. 수원 세 모녀의 죽음, 탈북여성의 고독사가 발생하고 그 기억이 채 사라지기 전에 비슷한 사건이 반복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죽음이 다뤄지는 방식이나 파장은 예전 같지 않다. 반복되다 보니 둔감해진 것일까? 이번 일을 바라보며 두 가지 질문을 하게 되었다. 첫째, 배제와 고립에 관한 질문이다. 무엇이 가난한 이들을 타인과의 관계 형성과 사회 참여로부터 물러나게 만드는가? 우리 사회의 미디어와 담론에서 가난은 추상화되고 존중 없이 대상화된다. 가난한 이의 삶은 구체적인 실체로 깊이 다루어지기보다는 모금 캠페인을 위해 가공된 사진으로 자선의 대상으로 동원된다. 21세기 자본..
“농협계좌로 부탁합니다.” 농업 단체에 강의비나 고료를 받을 때 받는 부탁이다. 농촌 구석까지 있는 금융기관이 농협이기 때문에 이체 수수료를 절약하기 위해서다. 스쿨뱅킹 계좌도 대부분 농협이다. 다른 은행으로 금융업무를 처리하려면 학교에서 수수료를 내야 해서 가급적 농협으로 한다. 농민들은 농산물 출하대금과 농업정책자금을 수령하려면 농협계좌 보유는 필수다. 금융사고도 많은 금융기관이지만 ‘곧 죽어도 농협’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농협계좌 하나씩 트게 되어 농협은 금융정보의 핵을 거저 쥔다. 정부의 주요 금융파트너이자 ‘민족은행’이라는 명분을 내건 농협의 정식명칭은 ‘농업협동조합’.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자조와 복지 증진이 설립 목적이다. 농민조합원의 농산물 생산과 수매를 돕고, 소비자들에게 우리 농산물을..
얼마 전 박사 학위를 받은 제자가 학회에 처음 발표하러 다녀왔다. 사회학자 박영신을 중심으로 해서 1970년대부터 학회지를 발간해온 유서 깊은 학회인데, 신진학자 발표 자리를 흔쾌히 마련했다. 막스 베버의 이론을 활용하여 한국 사회를 분석한 걸 높게 평가한 듯하다. 학회에서 돌아온 제자가 한껏 고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갓 박사 학위를 받은 저를 깍듯이 학자로 대해주셨어요.” 할아버지뻘 되는 원로학자가 30대 초반의 초짜 박사를 마치 동등한 학자인 양 존중했다. 그 어려운 막스 베버의 이론을 분석적으로 재구성하여 한국 사회에 적용하였다 한들, 평생 학문에 몸 바친 원로학자의 눈에 뭐 그리 대단하게 보였겠는가? 그런데도 두 세대나 아래인 젊은 박사의 연구를 귀히 여겨 초청해서 경청했다. 김덕영이 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