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한 달 만에 다시 안철수 교수에 관한 칼럼을 쓰게 됐다. 출간과 출연 이후 안철수 바람이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번 거세게 불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칼럼들이 쏟아지고, 유력인사들과 여러 조직들이 공개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은 12월 대선으로 가는 길에 이제 그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상수가 된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현상에 담긴 의미는 과연 뭘까. 지난해 나는 한 심포지엄에서 안철수 현상을 가리켜 ‘정치사회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격’이라 이름지은 적이 있다. 그들만의 리그인 정치권에 대한 시민 다수의 불만이 ‘안철수’라는 이름에 담긴 소통과 참여의 열망으로 드러난 게 반격의 본질이라는 것이었다. 시민사회는 숨 가쁘게 변화하는데도 정치사회..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이다. 동시에 언어는 정치의 집이기도 하다. 언어 또는 담론을 통해 정치가는 시민들의 열망을 대변하며 지지를 결집한다. 정치에서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사례로 손학규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의 슬로건인 ‘저녁이 있는 삶’을 들 수 있다. 이 말은 위기의 벼랑에 내몰린 시민 다수의 소박한 희망을, 민생·복지·경제민주화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감성과 공감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지난 2007년 대선을 주도한 말은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슬로건인 ‘경제 살리기’였다. 경제 살리기는 복합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한편에선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보수적 비판을 겨냥하고, 다른 한편에선 2000년대 중반부터 유행한 ‘..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지난 2월 나는 이 시평에서 ‘문재인의 운명, 안철수의 선택’이라는 연속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대선을 5개월 앞둔 시점에서 문재인 민주당 고문과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선 자리와 갈 길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싶다. 이유는 간명하다. 여전히 두 사람이 대선으로 가는 길에 야권의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변화가 없지는 않았다. 4·11 총선 결과가 문 고문에겐 다소 불리한 정치적 조건을, 안 교수에겐 다소 유리한 정치적 상황을 형성했다. 총선은 진보결집 못지않게 중도통합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이런 국면은 중도층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은 안 교수에 대한 기대감을 상승시켰기 때문이다. 문 고문은 6월17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문 고문의 슬로건은 ‘보통 사람이 주인인 우..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봄학기에 ‘진보와 보수’라는 교양강좌를 열었다. 500명이 넘는 학부생들이 신청한 만큼 나름 신경쓰면서 강의를 진행했다. 강좌 말미엔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이상돈 중앙대 교수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했다. 강의를 통해 다시 한 번 느낀 것은 20대들의 정치적 감각이었다. 20대들은 대체로 진보적이긴 하지만 진보적 성향과 보수적 성향, 그리고 이념적 경향과 탈이념적 경향이 공존한다. 대선의 해를 맞이해 새삼 생각해보는 것은 이념의 역사다. 세계사회의 이념구도는 진보의 시대(1950년대~1970년대 중후반)와 보수의 시대(1980년대~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거쳐 새로운 전환의 시대에 들어와 있다. 미국·일본에는 진보적 정부가, 독일·영국에는 보..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올 프로야구 열기가 남다르다. 여러 요인이 있는 듯하다. 박찬호, 이승엽, 김병현 등 해외파 선수들의 활약도 관심이거니와 선동열, 김기태, 김진욱 신임 감독들의 리더십도 화제다. 이 가운데 유독 내 시선을 끈 것은 넥센 히어로즈 김시진 감독의 리더십이다. 만년 하위팀인 넥센을 선두권에 진입시킴으로써 김 감독 리더십이 프로야구 안과 밖으로부터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른 스포츠와 비교해 프로야구는 특히 감독의 역할이 중요하다. 투수 교체, 타순 조정, 작전 구사 등 감독의 전략·전술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기장 안에서의 리더십만 중요한 게 아니다. 원정 경기의 경우 프로야구는 장기간 감독과 선수가 함께 움직여야 한..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총선 이후 보수 우위의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당 지지율, 대선후보 적합도는 물론 이념구도 조사에서도 새누리당이 계속 이니셔티브를 행사하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총선 승리의 효과가 하나라면, ‘통합진보당 사태’가 다른 하나다. 통합진보당 사태와 ‘임수경 의원 사건’을 색깔론으로 몰고 가는 것은 의도가 분명한 과잉대응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이 비례대표 후보 선출의 부정에 있는 만큼 이에 대해 철저히 책임지는 자세 또한 중요하다. 정치란 본디 전략, 국면, 구조가 상호 작용하는 공간이다. 예기치 않은 ‘종북 논란’ 국면은 야권연대의 전략적 의의를 훼손시키고, 시대정신 교체라는 대선의 구조적 특징마저 희석시키고 있다. 종북 논란에서 주목할 것은 중도 무당층의 향방이다. 천..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선생님 이야기는 20년 전 이야기지요.” 시인 김수영이 쓴 ‘현대식 교량’의 한 구절이다. 다소 뜬금없이 이 구절을 말하는 것은 올 6월이 주는 의미 때문이다. 전공이 정치사회학인지라 1987년 6월에 대해 학생들과 더러 토론하게 되는데, 격의없이 6월항쟁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 시구를 자연 떠올리게 된다. 학생들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나 역시 1979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 은사들로부터 1960년 4·19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지만, 19년이 지난 당시 열아홉 살의 나로서는 그 의미를 실감하기 어려웠다. 오는 일요일은 6·10항쟁의 25주년이 된다. 25년 전의 이번 주는 우리 현대사에서 중대한 분수령을 이룬 일주일이었다. 1972년 10월유신 이..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총선 이후 이 시평에선 진보개혁 세력을 계속 다뤘다. 진보가 그만큼 위기에 처했다는 증거다. 하지만 정치가 진보만으로 이뤄질 순 없다. 이번에는 보수 세력을 주목하고자 한다. 총선에서 내가 새삼 느낀 것은 한국 보수의 힘이다. 새누리당이 이겼던 일차적 원인은 민주통합당의 실책에 있었다. 그러나 정치란 반사이익 이상의 것이다. 총선 국면에선 위기를 헤쳐 나가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리더십이 돋보였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비대위를 마감하고 황우여 대표 체제를 출범시켰다. 일각에선 박 위원장의 독주에 우려를 표하지만, 12월 대선으로 가는 도정에서 박 위원장이 이니셔티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돌아보면 우리사회 총선과 대선에서 보수 세력은 진보개혁 세력에 상대적 우위를 점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