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는 ‘크리스털 마운틴’이라는 맛있는 커피가 있다고 하지요. 헤밍웨이가 좋아한 커피라고도 합니다. 10년 전 쿠바에 갔을 때 좀 사오려고 했으나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크리스털 마운틴’은 일본인들이 만든 상술이었고, 정작 쿠바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커피였지요. 여기 ‘재범의 위험성’이라는 허위의 기초 위에 지어진 이상한 집이 있습니다. 그 집 밖으로 나가는 건 범죄고, 나가면 처벌한다고 합니다. 보안관찰법이라는 집입니다. 저는 보안관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내내 ‘크리스털 마운틴’이 떠올랐습니다. 법무부는 저에 대한 보안관찰 처분을 지난 19년 동안 모두 7차례 갱신했습니다. 2015년 7차 보안관찰 처분 사유는 ①신고의무 불이행 ②관련 조사 불응 ③반성이 없으며 ..
며칠 전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민주가족 송년의 밤’에 참석할 수 있냐기에 ‘병원 일이 바빠서 못 간다’고 했습니다. ‘따뜻한 손길 마주잡고 새 하늘 새 땅을 열어가는 뜻깊은 자리’….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간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지금은 고문 같은 국가폭력을 치유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2008년만 해도 생소한 이야기였습니다. 오직 ‘진실의 힘’만 믿고 재심으로 간첩 누명을 벗고자 한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고문조작 피해자들이 공신력 있고 권위 있는 국가기구에서 고문 치유 상담을 받을 때, 훨씬 치유효과가 좋고 안정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고문 치유를 제안하고 2대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님을 만났습..
촛불혁명 원년이자 6월항쟁 30주년인 올해, 권력의 비리와 음모를 폭로한 ‘딥스로트(Deep Throat)’ 얘기가 많이 나왔지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Bob Woodward)와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 기자가 익명의 제보자를 보호하면서 붙인 별명이 ‘딥스로트’입니다. KBS 다큐멘터리 은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제보한 ‘딥스로트’를 다뤘습니다.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황당한 거짓말을 논파할 수 있었던 것은 교도소 내에 ‘딥스로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된 박종철을 고문 치사한 수사관 2명에게 “당신 둘이 죄를 모두 뒤집어쓰면 1억원씩을 주고 가족생활을 보장하겠다. 조..
쏟아지는 비와 따가운 햇살 아래 446.44㎞를 묵묵히 걷는 사람들이 있다. ‘부랑인’으로 낙인찍혔던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이 부산 주례동 형제복지원 터 앞부터 청와대까지 22일 동안 국토대장정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외친다. “우리를 왜 가두었는가? 특별법 제정으로 형제복지원 진상을 규명하라!” 행진을 시작하기 전, 피해 생존자 한종선씨가 나를 찾아와 감기약, 진통제, 해열제를 챙겨 갔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열한 살 누나와 함께 끌려간 한종선씨는 84-10-3618이다. 1984년 10월에 3618번째 입소한 ‘부랑인’이란 뜻이다. 그는 2012년 여름,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 형제복지원의 민낯을 다시 세상에 알리고 망각의 벽을 깨뜨렸다. ‘84-10-3618’이란 숫자가 아니라 ‘한..
1980년 5월, 광주 동신고등학교 3학년, ‘내 영혼이 쨍 하고 금이 가 버린’ 기억. 그 5·18을 다룬 영화 를 보았습니다. 1980년대 수많은 사람들을 군사독재와 싸우게 만들었던 ‘광주 비디오’를 만든 독일기자 힌츠페터와 그를 도운 택시기사 김만섭 이야기입니다.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는 정권을 잡기 위해 ‘광주사태’를 일으켜 민주화를 요구하는 무고한 시민들을 짓밟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죽고 다쳤습니다. 전두환 신군부는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이 광주 밖으로 알려지는 걸 엄격히 통제했고, 가까운 순천 사람들도 뉴스에 세뇌되어 “서울에서 폭도들이 몰려갔다던데?” 얘기할 정도였지요. 그 학살과 야만의 한가운데서 고립된 광주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였습니다. “제발 바깥에 알려..
요즘 나는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탄원서를 보내주셨습니다. ‘#내가_강용주다’, 많은 분들이 해시태그 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해시태그 중 특히 제 마음을 콕 찌른 내용이 있었습니다. ‘#강용주를 맘껏 놀게 하라.’ 비틀스의 노래 렛잇비(Let It Be)가 떠오르고 저는 우울해집니다. 이제 휴가철입니다. 여행이란 낯선 것과의 만남이면서 기존의 억눌림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 여행을 제한받고 감시당하고 보고해야 한다면, 휴식이나 충전이 아니라 또 하나의 굴레가 됩니다. 여행 갈 때마다 ‘이번엔 괜찮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어떻게 여행이 즐거울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아직 여름휴가 계획을 못 세웠습니다. 10년 전 쿠바를 한 달 다녀왔습니다. 물론 ‘신고의무’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