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권이 탄생했다. 이 정권은 그냥 주기적인 선거가 아니라 매서운 추위를 무릅쓰고 촛불로 어둠을 밝히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절규했던 시민들의 궐기로 세워졌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권은 지금 승리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그들은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압도적인 민주적 열망을 어떻게 국가운영에 반영할지 깊게 고뇌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만약 새 정부의 요직을 맡았다고 가정할 때, 산적한 난제를 어떻게 풀지 엄두가 날까? 군사정권이나 역대의 퇴영적 정권이라면 매우 손쉬운 방법이 있었다. 즉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폭력으로 제압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촛불’의 힘으로 출범한 ‘민주정부’가 그런 비열한 통치방식에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현명한 방..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에 한반도 위기설까지 나돌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4월전쟁설’이나 ‘4월27일 북한 선제타격설’이 확산되고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김정은 망명설’이 떠돌고 있다. 그제 금융가에서는 ‘외국계 글로벌 기업들이 대피 계획을 가동했다’는 루머가 돌아 확인소동이 벌어졌다. 외신들도 위기설에 가담했다. 미국 NBC방송 의 간판 앵커인 레스터 홀트가 이달 초 비무장지대(DMZ) 등에서 생방송한 것이 위기감을 부추겼고, 중국과 영국 언론들은 북한 정권교체설을 흘리고 있다. 위기설 여파는 심상치 않다. 무엇보다 주식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해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주가가 떨어졌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나라 전체가 심각한 상황으로 몰려갈 수 있다. 하루라도 빨리 잠재울..
결국은 탄핵이 될 것임을 별로 의심하지 않았지만, 막상 이정미 재판관이 “그러나 (세월호 사태가) 참혹한 것이긴 하나 탄핵 사유까지는 안 된다”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불안해졌다. 하지만 잠시 후, 이 역사적인 판결의 결론은 ‘피청구인(대통령)의 파면’이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몰상식이 활개치는 사회에서 살아온 탓일까. 생각하면 매우 당연한 결론인데도 이 결론을 듣자 나는 눈물이 날 만큼 크나큰 해방감을 느꼈다. 지난 몇 달동안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열심히 광장으로 나갔던 사람들, 그리고 몸은 못 나갔어도 마음만은 촛불을 든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수많은 한국인들이 느낀 감정도 기본적으로는 같았을 것이다. 우리는 무책임하고 개념 없는 대통령 하나를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
우려했던 대로 트럼프의 난폭한 통치가 시작되었다. 트럼프는 백악관으로 들어가자마자 뜸도 들이지 않고 곧장 이슬람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거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시켰다. 하지만 이 반문명적인 (혹은 심지어 반인륜적이라고 해야 할) 조치는 곧 미국의 한 연방법원이 위헌적이라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당분간 집행이 보류되었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공격적인 행동은 거침이 없다. 그는 자신의 행정명령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는 선거운동 중 공약한 것을 실천할 뿐이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그리하여 멕시코와의 국경에 견고한 장벽을 설치하고, 오바마 정부에 의해서 중단되었던 대규모 송유관 건설의 재개 등등, 기습적인 조치들을 주저없이 감행하고 있다. 의회의 동의도 받지 않고, 모든 민주주의적 상식을 무시하..
새해 첫 월요일 저녁 JTBC 신년토론을 유심히 보았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진행되고, 전국의 광장에서는 사상 최대의 촛불데모가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가장 신뢰받는 언론으로 떠오른 방송사의 특별 프로그램이기도 했고, 또 예고된 출연자들에 대한 기대감도 컸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나는 지금 한국의 제도권 정치에서 이른바 양심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 측을 가장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는 두 사람, 즉 이재명과 유승민이 공개토론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매우 궁금했다. 알려진 대로 둘은 곧 닥칠 차기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올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그들이 과연 소속정당의 공식후보가 될 수 있을..
시인 김해자는 미발표 근작시 ‘여기가 광화문이다’에서 “대통령 하나 갈아치우자고 우리는 여기에 모이지 않았다”고 일갈한다. 이것은 지금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오는 수많은 시민들의 공통적인 심경일 것이다. 우리가 하던 일을 멈추고 “빛이 사방을 덮어 세상 곳곳으로 퍼진다는 광화문”으로 모이는 까닭은 명백하다. 세습권력들과 그들에게 빌붙어 충성해온 직업정치인, 관료, 언론, 각종 전문가들로 구성된 지배체제를 탄핵하기 위해서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연민과 분배와 정의가 얼어붙은 사이/ 농촌은 해체되고 청년들은 미래를 빼앗기고 노동자들의 삶은 망가져버린” 나라를 다시 일으켜 “만인이 만인에게 적이 되고 분노가 되는 세상이 아니라/ 만인이 만인에게 친구가 되고 위안이 되는 세상을” 열자고 한목소리로 ..
일각(一刻)이라도 빨리 대통령직 수행을 정지시켜야 한다. 이대로 두면 너무 위험하다. 보수·진보를 가릴 것 없이 온 국민이 거의 일치된 목소리로 더 이상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으니 물러가라고, 주권자의 이름으로 준엄하게 명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이 상황에서 고위공직자들을 새로이 임명하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라는 무시무시한 조약까지 맺었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이대로 가면 국가·국민의 운명을 파탄으로 몰아넣을지 모르는 이와 같은 짓들을 계속해서 저지를 게 아닌가? 이 나라가 지난 수년간, 선출된 공적 권력이 아니라 사실상 최아무개라는 사인(私人)에 의해 지배돼왔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되었을 때, 대한민국 국회는 즉각 대통령의 직무 정지에 착수해야 했다. 민주주의가..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하나? 황당하다고 해야 하나? 국회에 나와서 임기 내에 개헌을 주도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할 때만 하더라도 독선적인 표정이 역력했는데, 바로 이튿날 “국민들께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사과한다면서도 빤한 거짓말을 몇 마디 하고는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고 퇴장하는 것을 보고 그걸 진솔한 사과라고 받아들일 ‘국민’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래도 늘 자기만 옳다는 독선적인 자세로 일관하던 권력자가 저렇게 힘이 빠진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낯선, 결코 유쾌하다고 할 수 없는 경험이다. 생각할수록 기괴스럽다. 국정원의 개입 덕분이든 뭐든 박근혜 정부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권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정권의 막후에서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