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이라는 것이 곧 국회를 통과할 겁니다. 이른바 패스트트랙에 올라갔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지요. 패스트트랙에 올라탔을 때 저는 대검찰청 형사정책단장이었습니다. 작금의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놈이지요. 누구의 조롱대로 시일야방성대곡을 불러야 할 텐데, 사실 저는 죄가 없습니다. 돌도끼 한 자루 들고 고질라와 카이쥬 태그팀과 싸워 이길 수 있겠습니까. 형정단장이라고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처음 국회를 찾았을 때, 여당 국회의원에게 들은 첫마디는 “너무 늦었다”였습니다. 법안도 안 만들어졌는데 이미 늦었다니, 이건 출산 준비하러 간 출산박람회에서 유골함 강매당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사실 이 수사권 조정 합의안이라는 게 핵무기 개발처럼 어찌나 은밀히 이뤄졌는지, 누가 언제 어디서 만..
. 모래와 칼이 날리고 지사들의 의기와 애달픈 서사가 날카롭던 오래된 무협영화이다. 때는 명나라 경태제 시기, 주원장의 기상은 서리를 맞은 노각 꼬리처럼 쭈그러든 지 오래였고, 토목의 변으로 정통 황제가 사라진 혼란의 시기였다. 정치와 행정을 장악한 환관들의 전횡은 극에 달했고, 환관들의 시녀 노릇이나 하는 문무대신과 행정 6부는 노루 꼬리보다 초라한 신세가 되었다. 나라의 기강은 개족보가 되어 일개 환관이 상서나 대장군을 개 부르듯 오라 가라 할 정도가 되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원성이 온 천하를 뒤덮었으나 몇 자 되지 않는 궁궐의 담은 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창귀 같은 환관들은 동창이라는 정보경찰을 만들어 온 나라를 사찰하고 감시했다. 게슈타포나 KGB와 같은 정보경찰인 동창은..
어린 시절 우리들의 영웅은 로버트 태권브이와 김일 선수였다. 일제 로봇이 독점하던 때에 혜성처럼 나타난 로버트 태권브이는 곧, 마징가 제트와 싸우면 누가 이길 것인가를 놓고 조무래기들의 주먹다짐도 불사하게 만드는 애국심의 상징이 되었다. 물론 마징가 제트 따위는 늦가을 고추잠자리처럼 쉽게 잡을 수 있다고 신앙 고백하듯 말했지만, 일제 샤프펜슬의 상품성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과학기술의 총합체인 로봇 분야에서 일본을 이긴다는 것이 쉽게 확신되지 않았다. 찝찝한 집단적 정신승리에 불과했다. 그 찜찜함을 일거에 날려주는 것은 역시 프로레슬링이었다. 박치기 한 방으로 산만 한 덩치의 상대방을 일거에 침몰시키던 김일 선수나 표범처럼 날아 적들의 가슴팍에 드롭킥을 내리꽂던 이왕표 선수는 우리 시대의 방탄소년단이자 어벤..
과학자들이 원숭이를 가둬놓고 실험을 했다. 과학자들이 하는 일이 대부분 그렇듯 이번 실험도 고약하다. 실험장인 스키너 박스 안에 나무를 설치하고 그 위에 바나나를 매달아 놓았다. 물론 공짜 바나나는 아니다. 원숭이가 나무에 오르려고만 하면 가장 질겁하는 물을 뿌려댔다. 원숭이 뇌에 전극을 꼽거나 전기고문을 하는 실험에 비하면 양반이니 너무 분노하지는 말자. 몇 번 짜릿한 물벼락을 경험하자 원숭이들은 아무도 나무에 올라가려 하지 않았다. 평형상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 평형, 평정 상태를 파괴하고 극한 상태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과학자들은 원래 있던 원숭이 중 한 마리를 빼고 대신 새로운 원숭이를 집어넣는다. 물벼락을 맞아본 적 없는 신참 원숭이는 바나나를 보고 환장하여 나무에 오르려고 한다..
조선 초 함길도에 김생이라는 거부가 살았다. 함길도는 함경남북도에 걸친 땅인데 발해가 망한 후 거란족 등이 차지했다가 조선 초에 다시 우리 땅이 되었다. 김생은 미개척지 함길도로 이주하여 황무지 개간으로 큰 부를 이뤘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으련만, 그건 동화 속 이야기이고 현실에서는 늘 악당이 등장한다. 김생의 친구 김원룡에게는 김도련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이 자가 무척 사악했다. 김도련은 흉계를 꾸며 김생의 부를 빼앗기로 마음먹는다. 김도련은 ‘김생이 내 아버지의 노비였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면서 노비추쇄문서를 형조에 제출했다. 노비추쇄문서는 도망간 노예를 찾아달라고 형조 등에 제출하는 소장과 같은 것이다. 친구 사이였던 김생과 김원룡이 주종관계일 리 없건만, 황당하게도 형조는 김도련의 ..
사실 세상의 주인은 곤충이다. 곱등이, 노린재, 집게벌레 등이 지구의 주인이라니 불쾌감이 치솟겠지만, 지구 환경을 만들고 인류를 선택한 것은 곤충이다. 공룡시대에서 포유류 전성시대가 된 것도 단지 하늘에서 날아온 불덩어리 덕분만은 아니라고 한다. 거대 고사리 대신 화분식물이 지구를 뒤덮어 포유류들이 먹고살 수 있게 해준 것도 벌, 나비, 파리와 같은 곤충들의 수분활동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과학자들이 그렇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의 착각과 달리 우리가 곤충들을 선택한 게 아니라 곤충들이 우리를 선택한 것이다. 곤충은 지구 환경도 바꾸고 있다. 예를 들어 더 이상 석탄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흰개미 등이 나무 잔해를 분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게다가 전체 곤충의 90%는 익충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