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되었다. 그동안 북핵 등 여러 일이 있었다. 사드배치, 인사파동 등 불만스러운 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자면, 문재인 정부는 기대 이상으로 여러 문제들을 잘 풀어나가고 있다. 여기에는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그의 핵심측근들이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겪은 시행착오에 대한 교훈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불통의 박근혜 정부와 비교되어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몰라도, 소통 등 대국민 정치는 그 어느 정부보다도 잘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대국회, 특히 야당에 대한 여의도정치에서는 문제가 많다. 단적으로 평가하자면, 대국민정치가 A학점이라면 대여의도정치는 C학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여소야대와 다당제라는 현실적 조건을 고려할 때 처음부터 ..
김영삼과 김대중. 한국 민주화의 두 큰 나무다. 하지만 사당정치와 지역주의를 두 축으로 한 ‘3김 정치’라는 부정적 유산을 남겼다. 사당정치와 관련된 것이 친·인척과 비선을 중심으로 한 측근정치이다. 측근정치는 삼엄한 군사독재의 감시와 공작정치에 대항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불가피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부작용이 커서 양김이 대통령이 된 후 자식들과 측근들이 줄줄이 감옥을 가야 했다. 양김과 함께 사라졌던 측근정치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측근 문제가 제기된 것은 ‘십상시’ 문제이다. 이 문제가 일단락되면서 사라지는가 싶었던 측근 문제가 하루가 멀다고 다시 터져 나오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 중심에는 최순실씨와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이 자리 잡고 있다. 청와대와..
“새해가 두렵다.” 지난번 이 면에 썼던 칼럼의 제목이다. 연말을 장식한 정윤회 파동, 땅콩 회항,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의 청탁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라는 네 가지 사건은 박근혜 정부의 불통정치로부터 재벌, 제1야당과 한국민주주의의 현주소를 각각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절망적이지만 진짜 문제는 새해에도 희망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라는 주장이었다. 구체적으로, 정윤회 파동에 대한 대응을 볼 때 박 대통령의 불통정치가 바뀔 것 같지 않고 새정치연합은 더더욱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글이 나간 뒤 진행된 현실은 이 우려를 더욱 확실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새정치연합과 한국정치의 미래가 달려 있는 2월 전당대회가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간 대결로 치러지게 됐다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해..
“대한민국의 국시인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자유민주주의를 압살해온 ‘자유민주주의의 압살사’.” 나는 해방 60주년에 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서문에서 한국현대사를 이처럼 요약한 바 있다. 그렇다. 자유민주주의란 이 땅의 냉전적 보수주의자들이 생각하듯이 단순히 반공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사상,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와 같은, 유엔인권조약의 ‘자유권’이 보장되는 정치체제이다. 80년대 ‘제3의 물결’이라는 범지구적인 민주화의 흐름을 정리한 세계정치학계의 권위 있는 집단연구는 특정한 이념이나 정당을 금지시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명확히 규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산주의’와 같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그 핵심인 사상의 자유 등 자유권을 압살..
박한철 헌법재판소장님, 우리의 헌법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최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정치권에 난리가 났습니다.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인구가 3.5배까지 차이가 나는 현 선거법이 위헌이기 때문에 인구격차를 2 대 1 이내로 줄이라는 결정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결정이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이번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과거의 전국구제도를 위헌이라고 판결하여 현재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게 만든 것에 이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중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민주주의의 기본은 보통평등선거입니다. 사실 근대민주주의가 시작된 프랑스대혁명 이후에도 투표권은 남자 유산자들에게만 주어졌고 보통평등선거가 실현된 것은 채 100년..
“4월은 잔인한 달.” 잘 알려져 있듯이, 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의 도입부이다. 만물이 살아나는 4월을 왜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4월이 아니라 5월과 6월이 잔인한 달이다. 5월은 민주주의를 짓밟은 5·16쿠데타와 비극적인 1980년 광주학살이, 6월은 동족상잔의 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10월도 잔인한 달에 추가할 만하다. 전후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절이었던 유신이 선포된 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10월의 잔인한 역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우려가 생겨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고 공개적으로 분개하면서 검찰이 인터넷 업체들과 협조해 인터넷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겠다고 나섰고 이에 대대적인 사이버 망명이 일어나는가 하면 ‘신유신’, ‘사..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영화 을 통해 유명해졌지만,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참패하자 감옥에서 돌아온 이순신 장군이 해군을 없애라는 선조의 명령에 대해 명량대첩을 준비하며 올린 답변이다. 불굴의 의지로 무장하고 배수진을 친 장수의 심정을 잘 보여준 말이다. 그리고 이순신은 단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과 싸워 대승을 거둠으로써 임진왜란을 끝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풍전등화에 놓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대위가 첫 외부행사로 현충원을 방문했고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방명록에 바로 이 문구를 한자로 남겼다고 한다. 새정치연합의 사활을 결정할 비대위원장을 맡은 문 위원장의 비장한 각오를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적절한 구절이다. 그러나 실제 새정치연합이 현재 취하고 있는 길이 과연 이순신..
‘비상함 없는 비상대책위.’ 재·보궐선거 참패 후 출범한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대위를 보면서 지난 칼럼에서 지적한 문제점이다. 패배에 익숙해져 습관적인 비대위를 꾸려나가서는 미래가 없기 때문에 박영선 원내대표가 겸임하고 있는 비대위원장에 외부인사를 영입해 당 해체 차원의 발본적인 혁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세월호 협상 과정에서 리더십에 상처를 입은 박영선 위원장이 외부인사 영입에 나섰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입 대상자들은 고사를 하고 대안으로 채택한 안경환, 이상돈이라는 ‘진보·보수 투톱 공동위원장 체제’가 당내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박 위원장은 리더십에 또 한 차례 상처를 입었고 당은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상돈 카드가 엄청난 반발을 가져왔지만 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