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의 청소년이 어머니 계정을 이용해 쿠팡이츠 배달을 했다가 논란이 됐다. 쿠팡이츠는 계정을 정지시키면서, 플랫폼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했다. 부산 배달대행사에서 일한 라이더는 사고가 나서 일을 못했는데, 하루 4만5000원의 오토바이 리스비를 갚지 못해 700만원의 빚을 졌다. 두 사례 모두 법으로만 따지면 대응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우리 노동조합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일부노동자에게 노조를 결성해 사용자의 부당한 대우에 맞설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기업은 노조법을 비웃으며, 다양한 꼼수를 쓰고 있다. 쿠팡이츠에서 배달노동자가 아니라 사장님 모집을 시작했다. 동네에서 쿠팡이츠 배달을 할 라이더 5명만 모으면 ‘벤더’라는 이름의 사장이 될 수 있다. 본사는..
한 해를 정리하기에는 조금 이르지만 자꾸만 지난 일 년을 돌아보게 되는 나날. 연말에 함께 읽고 싶은 소설이자 올해 읽은 가장 아름다운 소설 중 하나로 현호정의 ‘한 방울의 내가’(‘릿터’ 2022, 10/11월호)를 소개하고 싶다.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있는가 하면 자꾸만 의문을 품고 다르게 살아보려는 존재도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물방울도 그렇다. 자고로 물이라면 강, 바다, 비, 눈, 수증기, 얼음으로 끊임없이 순환해야 하는 법. 지구 어디에선가 발생해, 더 커다란 물과 합쳐지거나 더 작은 물로 나뉘며, 기화되거나 액화되면서 형태를 바꾸고, 거듭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 물의 운명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은 그 운명을 거슬러 강물도 바다도 비도 눈도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한 여자를..
SBS 금토 드라마 에 이어 JTBC 금토일 드라마 까지, 웹소설 원작의 드라마가 안방극장에 돌풍을 일으키며 연일 화제다. 언론에서는 앞다투어 의 인기 요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분석한 회귀물의 구조는 단순하다. 그들은 회귀물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으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들이 지금, 여기의 육신에서 벗어나 현재의 지식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길 욕망한다고 단평한다. 나 역시 웹소설 작가이자 연구자로 활동하다 보니 이러한 시류에 편승해 지금, 여기 시공간의 ‘몸’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시공간의 ‘몸’을 얻게 되는 웹소설의 주요 코드인 ‘회귀, 빙의, 환생(회빙환)’에 대해서 코멘트해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는다. 그때마다 나는 두 가지의 사실을 당부시키곤 한다. 하나는 웹소설에서 ‘회빙환’이란 코..
“같이 살면 굶어 죽진 않을 것 같았어.” 고작해야 24살, 단칸방에 살면서 변변한 기반 없는 아빠랑 왜 결혼했냐는 물음에 나온 엄마의 답이다. “사랑했으니까” 같은 낯부끄러운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멋없는 대답일지는 몰랐다. 사실 사랑만으로 결혼할 수는 없다. 가장 작은 경제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인 ‘가족’을 남과 꾸리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더군다나 여성 가구주의 빈곤율이 남성 가구주의 빈곤율보다 월등히 높은 이 나라에서, 엄마의 경제적 선택으로서의 결혼 이유는 더 무겁게 다가온다. 엄마의 결혼 이유를 뒷받침하듯 빈곤한 여성 가장들의 죽음은 계속 이어진다. 지난 23일, 신촌에서 생활고를 이유로 두 여성의 삶이 또 스러졌다. 2022년 11월 신촌 모녀, 8월 수원 세 모녀, ..
세월호 참사 속 10대를, ‘사회적 거리 두기’ 속 20대를 보냈던 청년들은 올해서야 집 밖을 나서기 시작했는데 10·29 참사를 겪으며 또다시 어울림의 두려움을 느꼈다. 교류가 아닌 고독이 생존의 규칙이 되어버렸고, 함께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잊었던 트라우마가 재현됐다. 그 어떤 세대도 반복적으로 경험한 적 없었던 가혹한 가르침이었다. 발길을 잃고 마음이 얼어붙은 또래 다수는 저마다 외로운 소수로 남기를 택했다. 그들은 반복된 죄책감과 분노 속에서 침묵과 고립을 택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이 일방적으로 공개된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에 ‘개인정보보호법상 문제가 없다’며 사법화된 정치적 해명을 마주하고, 이태원 참사 속 여성 희생자가 더 많이 발생한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에 ‘애초에 여성이 ..
쿠팡이츠가 10월28일 안전보건경영시스템(ISO45001) 인증을 받았다. 법적구속력은 없지만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쿠팡이츠는 노동자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이라고 보증해준 셈이다. 쿠팡이츠도 자랑스러웠는지 행사현수막에 ‘배달 업계 최초 인증’을 새겼다. 김명규 대표는 자신 있게 “안전 관리 노력이 이번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 취득을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됐다”고 말했다. ISO 인증에서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노동자 참여다. 그러나 인증대행기관인 DNV는 노조 의견을 청취하지 않았다. 배달노동자들은 쿠팡이츠를 최악의 기업으로 꼽는다. 쿠팡이츠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인 2시간 안전교육을 듣지 않은 라이더에게도 일을 시킨다. 노동자들이 영업용 보험에 가입했는지 확인하지 않으며, 자전거 킥보드 등을..
얼마 전 출간된 시인 앤 카슨의 아름다운 책 를 구성하는 192쪽의 종이는 아코디언처럼 하나로 이어져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오빠를 기억하기 위해 수집한 편지, 사진, 유품은 낱장의 종이로 끊어지지 않고 애도의 이야기에는 끝이 없다는 듯 길게 펼쳐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그 상실을 담은 이야기는 도대체 어떻게 끝날 수 있는 것일까. 에서 H 포터 애벗은 이야기의 끝(ending)과 종결(closure)을 구분한다. 끝이 서사의 결말을 형식적으로 맺는 것이라면, 종결은 서사의 갈등을 내용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결은 반드시 서사의 끝에 위치할 필요가 없으며 모든 서사에 반드시 종결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끝은 났지만 종결이 되지 않은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애벗에 따르면 서사가 종결..
이태원에서 일어난 끔찍한 참사는 며칠 동안 제대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정부는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였고 사건의 전후처리에 고심하는 중이다. 부디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영면을 바랄 뿐이다. 참사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이태원에서 큰 사고가 났는데 사람이 죽은 것 같다는 게시글이었다. 처음 글을 봤을 땐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이고 아무래도 축제 기간이다 보니 음주와 관련한 작은 사고가 났을까 싶었다. 뉴스 등에는 자세한 사항이 나오지 않아 인터넷에 이태원 관련 사건 소식을 접하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모자이크를 하지 않은 채 자리에 드러누워 CPR을 받는 사상자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시되고 있었다.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