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특파원 시절이던 2009년 일본의 한 경제인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미쓰비시UFJ리서치&컨설팅 이사장으로 있던 나카타니 이와오(中谷嚴)란 사람이었다. 오부치 게이조 내각(1998~2000) 때 총리자문기관인 경제전략회의의 핵심 멤버로 참여한 나카타니는 일본의 구조개혁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가 쓴 책 한 권이 현지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던 게 인터뷰하게 된 계기였다. 당시 그는 저서 를 통해 미국형 신자유주의를 맹신했던 자신의 과거 판단이 오류였음을 인정하면서 규제 완화와 자유경쟁체제 강화가 일본을 더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규제에는 사회나 경제를 정체시키는 요인이 가득하다고 봤다. 당시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미국식 자본주의가 초래할 사회의 영향을 과소평가했다”고 인터뷰에서 털어놓았..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응은 1981년 미국 항공관제사 노동조합 파업에 대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진압을 떠올리게 한다. 그해 8월3일 연방 공무원 신분인 관제사들이 근무환경 개선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가자 레이건 대통령은 “국가 경제와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며 즉시 업무복귀명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파업 관제사들이 48시간 내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1만3000여명의 파업 관제사 중 1600여명만이 복귀했고, 레이건은 이틀 후 1만1300여명의 관제사들을 해고했다. 또한 해고된 이들이 향후 어떠한 공직에도 취업할 수 없도록 했다. 관제사 노조는 그해 10월 해산된다. 이 사태를 놓고 보수진영은 불법 파업에 ‘법과 원칙’으로 대..
2022년 10월29일 밤, 서울 용산 이태원동 119-7번지 골목에서 두 번째 세월호가 침몰했다. ‘두 번째 세월호’란 말을 수차례 쓰고 지웠다. 한 번 비극을 겪었다고 다음 비극이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웃다가도 심란하고, 자다가도 수시로 깼던 지난 한 달이었다. ‘두 번째 세월호’는 참사 규모만 해당하지 않는다. 유족을 향해 ‘시체장사’라 하더니 이번엔 ‘감성팔이’라 비난하고, 꼬리 자르기식 책임 전가가 등장하는 장면도 8년 전과 유사하다. 애도와 추모를 탈정치로 몰고 가려는 시도 또한 낯설지 않다. ‘두 번째 세월호’는 국가 권력의 총체적 무능이 한 사회를 유지하는 상식적 기준을 무너뜨렸고 정치적 내전을 불사했던 상황을 집약한 말이다. 정부가 사고라 고집해도 이태원 참사는 명백한 정치적 참사다...
지난달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법인세 감세를 부자감세라 주장하는 것은 정치과정에서 제기된 구호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3%포인트 낮추는 내용 등을 담은 정부 개편안을 지지하면서 “최근 법인세율 체계 개편안 발표 이후 이러한 주장(부자감세)이 제기되는 것은 민생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력을 집중해야 할 시점에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KDI 내부에서 보고서 내용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검토 보고서가 제출됐지만 묵살된 것으로 국감자료를 통해 드러났다. 보고서가 공개되기 전 KDI와 기획재정부는 합동정책간담회도 열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국감 기간에 보고서를 내세워 법인세 감면을 옹호했다. 지난 6월 한덕수 국무총리가 홍장표 KDI 원장을 두고 ..
꽃다운 청춘들이 쓰러졌다. 8년 전 세월호의 아픔이 완전히 아물지도 않았는데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생명들이 또 허망하게 삶을 마감했다. 이번에는 서울 도심 한복판 이태원이었다. 모처럼 즐기러 나간 핼러윈 축제는 ‘악몽’으로 변했다. 숨이 턱 막혔다. 20대와 10대인 두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가족을 잃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내 딸이 저기에 갔었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상이 머리를 스쳤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지 열흘도 더 지났다. 그러나 정부가 보여준 수습 과정을 살펴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우리 곁에 국가가 있긴 한 걸까.’ 분노가 스멀스멀 치밀어 오른다. 참사 다음날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참담하다. 일어나선 안 될..
이태원의 좁디좁은 골목에서 150명이 넘는 소중한 생명이 허망한 죽음을 맞은 다음날 아침. 국민의 안전을 총책임지고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말은 귀를 의심케 했다.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 당장 머리 숙여 사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희생자들과 유족, 국민들의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책임 회피였다. 정부는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해 정쟁을 멈추자고 하면서 이번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기하는 지침을 내놓았다. 참사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하기보다 자신들에게 미칠 후폭풍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정부는 참사를 막지 못한 제도적 한계도 주장하고 나섰..
정치 스스로 사라진 게 아니라 국민들이 정치를 버린 수준까지 이르렀다. 정치가 있다면 단 하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적대적 공생뿐이다. 윤 대통령 리스크가 이 대표를, 이 대표의 리스크가 윤 대통령을 살리는, 역설의 정치다. ‘윤석열 리스크’의 핵심은 고립이다. 윤 대통령에게 여당은 자기 세력이 아니다. 신화가 있는 정치인도, 가치의 리더도 아니다. 이런 처지라면 핵심세력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상식적이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관료를 조직화했던 역대 대통령의 경로라도 따라야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집권 6개월여 만에 권력기관 1급 관료 상당수를 인사조치했다. 정권 초 권력기관에 파견된 1급 관료들은 각 부처 인재들이다. 이들이 짐을 싸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윤 대통령은 윤핵관 틀..
2015년 프랑스에선 신년 벽두부터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게 불붙었다. 그해 1월7일 파리에 있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테러를 저질러 12명이 사망한 사건이 계기였다. 테러는 샤를리 에브도가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만평을 게재한 것이 발단이 됐다. 샤를리 에브도는 풍자에 성역을 두지 않고 도발적인 비판을 해온 매체로 잘 알려져 있다. 무함마드를 형상화하는 일체의 행위를 죄악시하는 이슬람의 입장에서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이후 논란은 프랑스 국경을 넘어 번져나갔다.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라는 구호로 대변되는 표현의 자유와, 특정 종교를 모욕하는 자유까지 허용되어선 안 된다는 견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