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동안 매주 ‘몇어찌’를 연재하면서 어쩌면 나는 이 순간만을 계속해서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신문 지면에 쓰는 나의 마지막 칼럼일 것이다. 2005년 서울신문에 첫 칼럼을 쓴 이후 참 많이도 썼다. 모든 시작하는 것은 끝이 있다고, 경제학자로서 신문에 쓰는 고정칼럼은 이제 접으려고 한다. 학자 혼자서 해볼 수 있는 실험으로는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지만, 혼자 하는 걸로는 더 연구를 끌어갈 형편이 되지 않는다. 준비 중인 몇 권의 책을 끝으로 경제학자로서의 내 삶은 접을 준비를 하는 중이다. 억지로, 참 오래 끌고 왔다. 그러나 이제 그만 손에서 내려놓으려고 한다. 마지막 신문 칼럼의 모티브는 이제 곧 개봉할 영화에서 따올까 한다. 한국 경제는 지난 10년간 ‘꽃마차’ 이론이 주류를 ..
서울 마포에 성미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다. 이 산을 밀어버리려는 사람들에 맞서 마포주민들이 오래된 싸움을 했고, 이겼다. 그후 이 지역에서 ‘마을 만들기’라는 주민들의 실험이 시작됐다. 많은 부모들이 가장 보내고 싶어하는 대안학교 중의 하나도 생겼고, 주민들이 쓸 수 있는 동네 극장도 생겼다. 우리가 외국의 지자체에서만 보던 크고 작은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고건 시장 시절에, 성미산 마을학교만큼 서울시가 자랑할 만한 지역 공동체가 형성된 적이 있었다. 한양주택이라고 불리던 곳이고, 담장을 허물고 꽃담을 만들던 동네…. 진짜 시민들의 삶 속에서 정말로 공동체라고 부를 만한 곳으로 형성되어 가던 곳으로 아직도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동네다. 멀쩡하던 한양주택의 집들을 부수고 주민들을 쫓아내면서 올라간..
나는 민주노동당의 당적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다가 분당하면서 탈당했다. 사민주의 정당 정도의 이름이라도 가지면 입당을 하려고 했는데, 대뜸 ‘진보신당’이라고 이름을 달아버리는 데 실망을 하고 아직 입당을 안 했다. 열심히 진보정당 운동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당원이 아니면 정말 편하다. 어쨌든 그 후로 당이라는 이름으로 무슨 활동을 하지는 않고 개별적으로 사안에 따라서 정치인들과 같은 자리에 앉기는 한다. 새만금, 4대강, 탈토건 정책 그리고 최근의 한·미 FTA까지. 좋든 싫든 정치라는 과정을 통하지 않고서는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들이다. 지난 수년간 이렇게 민주당을 지켜본 결과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경제 입장을 취한 정치인들은 민주당 내에서 한 명씩 한 명씩 고립되고 사라져갔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보..
경제 민주화라는 개념으로 한국 현대사를 본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 언제일까? 물론 중요한 날이 몇 번 있겠지만, 나는 1998년 5월18일을 들겠다. 막 출범한 국민의 정부,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 운용에서도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IMF 외환위기 한가운데라고 하지만,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찾아오면서 많은 변화를 기대한 것이 사실이다. 5·18 기념과 함께 이날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던 김태동과 기획수석이던 강봉균이 자리를 맞바꾸는 아주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물론 교수 출신이라 능력부족 등 전해지는 설은 몇 가지가 있지만 본인도 아직 정확한 이유를 모르는 사건이다. 민주당 정부 10년, 그 후에 한나라당 정부 4년을 거치면서 모피아 혹은 그와 유사한 관료가 아닌 사람이 청와대 경제수..
2002년 봄 어느 날로 기억된다. “진짜 모피아가 그렇게 자기들끼리 다 해먹나요?” “모피아는, 사실 뭐 그렇게까지 해먹지도 못해. 진짜로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끝까지 챙겨주는 건, 이피비(EPB- 옛 경제기획원) 사람들이야. 정말로 잘 뭉치더라고, 끈적끈적하게….” 이 얘기는 총리실에 근무하던 시절, 바로 직속상관이었던 산업심의관과 회식 자리에서 나누었던 내용이다. 그는 나에게 재경부 수첩을 보여주면서,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무슨 돈으로 전부 다 이렇게 강남에 사느냐, 한탄스러운 얘기를 하기도 했다. 2001년, 2002년이 내 기억으로는 실물경제를 담당하던 자리까지 모피아 출신들이 밀고 들어오던 그런 때였다. 별것도 아닌 한두 자리를 놓고서 부처들끼리 지독하게 싸우는 게 좀 한심해 보여서 결국 나는..
우석훈 타이거 픽처스 자문·경제학 박사 ‘시민운동 몇 어찌’라는 제목으로 경향신문에서 매주 연재를 한 것도 이제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이 기간 내내, 나는 한나라당이 결국 질 것이라는 점, 이름이야 어떻게 되었든, ‘시민의 정부’가 결국 출범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나 역시 예전의 민주당 혹은 민주통합당이 뭘 엄청나게 잘할 것이라고 믿어본 적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통합진보당이 갑자기 많은 국민들의 대대적 관심을 받으면서 2012년 판세를 완전히 끌고나갈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다만 내가 주목한 것은 MB라는 이름을 중심으로 형성된 거대한 혐오라는 에너지…. 지금도 나는 한나라당이 정상적인..
우석훈|타이거픽처스 자문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이때의 시장은 교과서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시장이 아니라, 바로 ‘삼성’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넘어간’ 것은 대통령의 오른팔이라고 말하는 이광재가 아니었을까? “광재마저도 이미 삼성으로 넘어갔는데, 나보러 혼자서 어쩌라구?”나는 이런 얘기로 대통령의 말을 해석했다. ‘2만달러 경제’ ‘샌드위치 위기론’ 등, 지난 정부의 국정을 토건으로 그리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동시다발적 FTA 국면으로 끌고간 근본적인 힘은 삼성에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경제범죄로 구속되어 있던 이건희 회장을 끄집어낸 것은 전 이광재 강원도지사가 주도했던 평창 동계올림픽 3차 ..
올해로 학위를 받은 지 17년째이다. YS 시절은 현대그룹에서, DJ 시절은 정부에서, 노무현 시절은 시민단체에서 보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공중파의 소위 ‘블랙리스트’ 속에서 보내는 중이다. 이번 대선에 이기고, 맘 편하게 은퇴하는 게 나의 꿈이다. 생태주의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전쟁이 한 가지 있었다. 한나라당 때문에 모든 게 이렇게 토건 국가가 되었다, 그건 아니다. 토건주의자들은 한나라당에도 민주당에도 있고, 심지어는 예전의 민주노동당에도 있었다. 시민단체 내에도 아파트 공급론자들이 있다. 이 싸움은 DJ 시절, 그린벨트 해제 때 처음 시작되었다. 그린벨트를 풀어서 거기에 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할 것인가, 아니면 그린벨트를 지킬 것인가? 이 싸움에서 환경단체는 졌고, 일부 임대주택을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