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불파불입(不破不立)이라는 말이 있다. 파괴가 없으면 새로운 건설도 없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촛불혁명은 구체제에 균열을 내는 데 성공했다. 불립불파(不立不破)라는 말도 있다. 건설이 없으면 파괴도 없다는 뜻이다. 구체제에 균열을 내어도 새 체제 건설에 실패하면 죽 쒀서 개 주는 격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탄핵 결정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음의 질문을 서둘러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새로운 체제를 건설할 수 있는가? 여러 측면에서 말기적 증상을 보이는 소위 ‘87년 체제’를 새로운 체제로 전환시키는 길은 무엇인가? 87년 체제는 1987년 헌법을 제도적 기초로 하기 때문에 개헌이 이를 위한 주요 수단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개헌안이 체제전환은 차치하고라도 정..
지난 19일 촛불집회에서 중고생들이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는 플래카드를 들고나왔다. 중고생의 패기와 치기, 그리고 생경함을 동시에 느꼈다. ‘혁명’은 사회변화에 대한 열망을 집약하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혁명이라는 표현이 점차 담론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20세기 혁명을 대표했던 사회주의 혁명이 대부분 비인간적 체제로 귀결된 것이 주요 원인이었을 것이다. 혁명이라고 하면 새로운 사회의 건설보다 폭력과 파괴가 지배적 이미지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래서 혁명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담론에 다시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중고생의 구호는 현재 상황을 혁명과 연결시키며 이러한 생각에 문제를 제기해 주었다. 혁명이 무엇인가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라는 책에..
“이게 나라인가”라는 절망감이 국민을 짓누르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도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다”고 일축했던 일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으니 국민들의 충격은 얼마나 크겠는가? 더 심각한 것은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정도면 대통령직의 정상적인 수행은 어렵다. 국가위기 극복을 위한 다양한 주장들이 백가쟁명식으로 출현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당도 대통령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거국내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에서 빠뜨려서는 안 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가라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 제대로 답을 찾지 않고 해결방안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 쉽다. 이 국면에서도 개헌론에 불을 지피려는 주장..
지난 10월9일은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북한의 핵실험은 한국의 대북정책에 큰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햇볕정책으로 지칭되었던 대북 화해협력정책이 핵실험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10년 전 북의 핵실험은 지금도 대북 대화정책을 반대하는 주장의 주된 이유가 되고 있다. 햇볕정책이 북의 핵실험을 초래했다는 주장에는 논리적 문제가 있다.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하는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일은 2005년 9월 미국 부시 행정부가 발표한 대북제재였다. 북한의 1차 핵실험 원인이 햇볕정책 때문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정권의 자세가 아니다. 따라서 당시 노무현 정부는 ..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 결과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선거결과가 예측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정치 흐름에 큰 변화가 생긴 느낌이다. 실제가 주는 무게감은 머릿속의 상상과는 확실히 다르다. 무엇보다 추미애 대표체제가 출범하면서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는0 한국정치에 일단 하나의 상수가 등장했다.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선후보로서의 지위가 굳어진 것이다. 2017년 치러질 대선은 87년헌법으로 직선제가 부활한 이후 치러진 어떤 대선보다 복잡한 구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여권에서 유력 후보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선거를 1년 남짓 남겨놓은 상황에서도 30% 후반대의 득표율은 일단 확보하고 출발하는 보수세력의 후보가 아직도 전면에 등장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여권이 단일후보를 낼..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이 성주군이 제안하는 다른 지역을 검토할 수 있다는 발언과 이에 국방부가 우왕좌왕한 모습은 사드 배치 결정의 졸속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졸속성은 물론이고 사드 배치의 비합리성을 적극적으로 추궁해야 할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입장을 분명히 정리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지층 내에서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안보문제와 관련한 정부 결정을 반대하는 것이 대선에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에서 사드 문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현재 단언하기 어렵다. 확실한 것은 선거가 1년 반 가까이 남은 지금부터 선거를 의식해 안보 관련 쟁점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면 선거 때는 이 이슈에 대한 주..
지난 8일 한·미가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한 이후 이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4일 “지금은 사드 배치와 관련된 불필요한 논쟁을 멈출 때”라며 “이해당사자 간에 충돌과 반목으로 정쟁이 나서 국가와 국민 안위를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로 만들고자 했다. 민주주의가 정상 작동하는 나라라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배치 직전까지 국방장관이 모른다는 식으로 연막을 쳤고, 기습적으로 배치를 결정한 이후에는 그에 대한 논의가 필요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태도는 국가를 자신의 사유물로 생각할 때만 가능하다. 사드 배치는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큰 논란을 초래한 문제다. 그런데 당사국의 국민이 이것이 국가..
지난주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했다. 적어도 투표 직전에 했던 예측과는 상반된 결과이다. 세계의 이목은 곧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세계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2008년 지구적 차원의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사람들이 반복되는 세계경제 위기에 그럭저럭 견디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겠는가? 지난주 한국을 방문했던 데이비드 하비가 이 문제와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 탁월한 업적을 내놓은 학자이다. 공개강연에서 그는 반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자신보다 자본가들이 자본주의에 더 큰 해를 끼치고 있다는 풍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