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사람마다 입을 모아/ 민주화가 잘되어간다고 그러네/ 어떻게 잘되어가느냐고/ 구체적으로 좀 말해달라고 그러면/ 하나같이 입을 열어 대답해주네// 청와대도 개방하고/ 각하란 호칭도 없애고/ 장관 임명장도 서면만으로 하고/ 국무회의 같은 것도 원탁에서 하고// … 벗이여. 닫힌 사회의 대중은 열린 사회의 대중을 모른다네/ 그들이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지배자들이 연출하는 텔레비전 속의 연극뿐이라네/ 그들이 알고 있는 자유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그들이 각색한 연극 대본뿐이라네.” 87년 항쟁을 거치고, 김영삼 문민정부까지를 보며 김남주 시인이 썼던 ‘연극’이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탄핵 가결 이후 계속 생각나는 시였다. 탄핵 가결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박근혜와 청와대는 탄핵 이유가 전혀 없다고..
이번주 금요일, 비로소 제도 정치권이 할 수 있는 최대선인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통과에 대한 우려가 저번 주 내내 이어졌지만 지난 3일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에 모인 전국 약 260만명의 물결이 ‘탄핵안 통과’ 이외 어떤 선택도 정치권에 남겨주지 않았다. 범죄자에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은 4차 담화를 통해 ‘국회 합의’와 ‘법’이라는 형식을 통해 ‘명예롭고 질서 있는 퇴진’이라는 마지막 배수진을 쳤지만 분노한 시민들의 부릅뜬 눈을 비켜 갈 수 없었다. 만약 9일 국회에서 국민들의 민의를 어기고 탄핵안이 부결된다면 새누리당 해체와 국회 해산까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광장의 목소리다. 박근혜 카드를 버리고 새로운 얼굴과 조합을 통해 재집권 플랜을 짜고자 하는 수구보수재벌 동맹의 ..
일본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지난 11월4일 싸뒀던 여행 가방을 풀고 노숙 가방을 싸서 광화문광장으로 나와 텐트 노숙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에 의해 블랙리스트로 찍힌 문화예술인 7500명이 시국선언을 하던 날이었다. 첫날 텐트 20여 동을 모두 경찰에게 빼앗기고 광장에서 맨몸으로 자야 했던 때가 어제인 듯한데 벌써 20일째다. 처음엔 문화예술인들과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사람들 몇이 시작했던 작은 텐트촌이 이젠 60여 동의 다양한 개인 단체들의 텐트와 마을창고, 마을회관 등이 들어선 작은 마을이 되었다. 각각의 텐트에는 입구마다 주인의 성격을 보여주는 개성 있는 현판들이 달렸다. 이제 작은 마을 하나를 이루었지만 전국의 수많은 거리와 광장과 함께 연계해 2011년 9월 세계 경제의 중심인 뉴욕 월가를..
분통이 터져 집에서 TV만 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대통령과 비선 실세들이 국가를 자기 집 곳간 정도로 여기며 나랏돈을 빼먹고, 아무런 위임도 없는 사인들이 국가 기밀과 국정 운영 핵심과 인사에 관여하고, 지시까지 내렸다는 이 황당한 상황. 국민의 80%가 하야하라는 의견을 밝히며, 이미 위임된 권력을 회수했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며 얼굴 바꾸기 놀음만 하고 있는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현행범 박근혜. 스스로 범죄 행위를 시인하며 검찰 조사와 특검까지 받겠다면서도 대통령직은 유지하겠다는 그 뻔뻔함이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이런 거대한 불의와 국가 전체가 침몰한 상태에서도 ‘혼란’을 이유로 정략적 이해관계만 저울질하는 야권의 행태도 두고 볼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역사의 고비마다 정의를 바로잡아..
‘국민 여러분, 호소드립니다. 가능한 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마감하려고 앉아 있는 시간. 긴급 공지가 SNS를 도배하고 있다. 백남기 농민 강제 부검을 정말 강행하겠다는 것일까. 25일 밤 12시까지인 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며칠 전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서울대병원을 지키고 있다. 24일 경찰은 언론을 통해 강제 집행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영장 재청구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모두가 연막이었다는 말인가. 정말 이 정부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어디까지 이 사회를 엉망으로 만들려는 것일까. 정부는, 아니 본인을 중세의 왕처럼 여기는 청와대는 물대포에 의한 공권력 살인 행위를 가리기 위해 그간 무수한 사회적 기준들을 허물어뜨려 왔다. 서울대병원은 외압에 ..
오늘은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말끔히 씻고 푹 자고만 싶었다. 삼일째. 네댓 시간밖에 눈을 못 붙였다. 작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 직사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선생께서 운명하실 것 같다는 소식에 들어온 길이었다. 고인에 대한 정부 당국자의 말은 직사 물대포만큼이나 기가 막혔다. 경찰은 서울대병원으로 들어오는 모든 도로와 문을 어떤 법적 근거도 없이 막고 조문조차 불허했다. 검경이 담합해 강제부검을 위한 영장을 두 번씩이나 청구하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고 있다. 얼마 전 국회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지만 어떤 진실규명도 없이 이렇게 야만의 시간 320일이 지나가고 있다. 한 선배 시인은 선생의 죽음이 ‘죽음이 아닌 죽임’이라고 했다. 그렇다. 선생은 죽은 적이 없다. 죽임을 당한 것일 ..
오늘 아침엔 여의도로 출근했다.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 공동대책위 회의. 새누리당사 앞 노숙농성 331일차, 부당해고 후 3500일 동안 거리농성을 하고 있다. 지난 26일엔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의 공식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다. 그는 단 하루의 사과였지만, 그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노동자들은 60여일을 단식하고 1년여를 새누리당사 앞에서 노숙으로 지새야 했다. 그 세월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물어야 할까. 한국 부자순위 120위권, 지금도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빼돌린 공장에서 배를 불리고 있는 박영호 사장의 사과와 책임은 언제쯤 물을 수 있을까.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에도 해고가 정당하다는 면죄부를 준 대법원의 사과와 책임은 언제쯤 물을 수 있을까. 정의는 언제쯤이나 바로 세워질 수 ..
“생겨선 안되는 모임/ 만나지 말았어야 할 인연들이었다/ 빨리 없어져야 할 슬픔의 집, ‘한울삶’/ 더 이상 회원이 늘면 안되는 단체였다// 푸르른 얼굴의 영정 하나씩을 들고/ 눈이 벌겋게 붓고 시시때때로 목이 메이고/ 가슴이 찢어지고 넋이 풀린 이들이/ 떨어진 낙옆들마냥 한 잎 두 잎 모였다// 모이지라도 않으면/ 살 수 없는 시간들/ 분통이라도 터트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던 세월”(졸시 ‘가는 길 험난하여도’ 중에서). 지난 8월12일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낭송했던 여는 시다. 1970년 청년 전태일이 분신한 후 수많은 이들이 독재와 착취, 분단구조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어떤 이는 고문으로 죽어갔다. 거꾸로 매달고, 전기로 지지고, 물을 먹였다고 했다. 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