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수처는 누가 견제하느냐?’는 멍청한 질문을 보수야당, 언론, 논객이 유포한다. 공수처에 대한 비리는 당연히 검찰이 수사한다. 검찰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공수처를 감시할 것이다. 물론 공수처는 눈을 부릅뜨고 검찰을 들여다볼 것이다. 공수처 발족 후 공수처와 검찰 간의 긴장, 팽팽할 것이다.” 조국 전 장관이 SNS에 올린 글이다. 어이가 없다. 검찰이 가졌다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그대로 공수처로 옮겨놓고 기껏 하는 얘기가 ‘공수처의 비리는 검찰에서 수사’할 테니 괜찮단다. ‘권한’의 문제를 슬쩍 ‘비리’의 문제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하던 이인규에게 어떤 비리가 있었으며, 조국 전 장관을 수사하던 검사들에게는 무슨 비리가 있었던가? ‘가장 지독한 나치는 성실한 나치’라는 말이 있..
조국 민정수석(직권남용 등 12개 혐의), 한병도 정무수석(선거개입), 전병헌 정무수석(뇌물), 신미숙 인사비서관(환경부 블랙리스트), 송인배 정무비서관(불법정치자금), 백원우 민정비서관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감찰 무마와 선거개입), 최강욱 공직비서관(허위 인턴증명서, 선거법 위반), 윤건영 상황실장(회계부정) 등등. 이렇게 많은 이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되었다. 일찍이 이런 청와대가 또 있었던가. 수사가 중단되지 않았다면 이 목록에 비서실장 이름까지 실릴 뻔했다. 최근에는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경제수석실 행정관, 민정비서실 행정관, 민정비서실 수사관이 구속되거나 조사를 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월성 1호기 폐쇄와 관련해 검찰에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을 지낸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의 휴대전화를 압..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돼 버립니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의 발언으로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문제가 되자 그는 언론이 자기 발언의 취지를 왜곡했다고 해명했다. 원래는 저 문장 앞에 “토착왜구”라는 주어가 붙어 있는데, 보수언론에서 이를 빼고 마치 자신이 ‘일본 유학을 다녀오면 모두 친일파가 된다’고 말한 것처럼 왜곡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언어학은 크게 세 분야로 이루어진다. 통사론·의미론·화용론이 그것이다. 이는 각각 언어의 세 요소, 즉 문법·어휘·맥락의 세 요소에 조응한다. 예를 들어 통사론은 낱말과 낱말을 결합하는 규칙을, 의미론은 각각의 낱말들이 가진 표준적 의미를, 그리고 화용론은 구체적인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문장의 용도를 탐구한다. 이제 언어의 이 세 ..
이 지면에 정희진씨가 생뚱한 글을 올렸다. 해당 칼럼의 온라인 제목은 ‘진중권 글에 분노한 이유’라고 되어 있으나, 아무리 읽어도 그가 분노하는 ‘이유’를 끝내 알 수가 없었다. 왜 화가 났을까? 내 글이 “권력층에 가까운 서울지역 대학 출신 일부 86세대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일반화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나는 그런 적이 없다. 평균적 문해력을 가졌다면 내 글이 86세대 중에서 ‘민주화’를 팔아 권력이 된 집단을 겨냥한 것임을 알 게다. 얼마 전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도 있다. “옛 친구들 페이스북을 찾아갔어요. 그렇게 막사는 애들도 있지만, 다들 잘 살더라고요. 제 생활하면서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 작은 실천들 하면서.” ‘민주화세대’라는 표현이 거슬렸단다. “민주화세대라는 통칭은 민주화세..
한국의 방역은 분명히 성공적이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진단키트의 선제적 개발, 보안카메라나 스마트폰을 이용한 철저한 추적 및 격리 시스템, 드라이브 스루와 같은 대량검사 체제, 정부와 지자체의 투명한 정보공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등 시민사회의 적극적 협조 등. 이 모두가 지난 메르스 방역 실패에서 얻은 아픈 교훈 덕분일 것이다. 애초에 중국의 방역은 서구의 모델이 될 수 없었다. 서구는 중국의 공산주의적 방식보다는 한국의 자유주의적 방식을 선호했다. 각국 정상이 한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와 방역의 노하우를 물었다.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은 드높아졌다. 모범으로 알았던 서구의 나라들이 거꾸로 한국에서 배워간다는 사실에 한국인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는 세계를 정복한 듯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매체에서 느닷없이 10년 전 한명숙 전 총리 수뢰 사건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당시 재판에서 검찰이 증인들의 증언을 조작했다는 것. 증언을 조작당했다는 당사자들이 언론 인터뷰에 나서고, 이를 신호탄으로 여기저기서 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한명숙 전 총리에 동병상련”을 느낀다며 그 사건의 “재심운동을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당시 검찰 수사는 명백히 정치적이었다. 1심에서 무죄가 나오자, 검찰에서 바로 ‘별건 수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눈앞에 닥친 서울시장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는 정치적 기동임에 분명했다. 오죽하면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소속 김성식 의원마저 적어도 선거가 끝날 때까지라도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겠..
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 등 세계를 휩쓰는 한류에 또 하나의 아이템이 합류했다. 전염병 대응의 모범으로 떠오른 한국식 방역. 거기에는 재빨리 ‘K방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검사, 격리, 치료의 노하우를 구하는 요청이 쇄도한다. 진단키트, 방호복과 글러브 등 국산 의료용품의 수출도 급격히 늘고 있다.이 모두가 사태 수습에 앞장선 영웅들 덕이다. 선제적으로 대응한 질병관리본부, 앞을 내다보고 미리 진단키트를 개발한 의료벤처, 환자들의 치료를 맡은 우수한 의료진, 살인적 초과노동을 견딘 헌신적 공무원들, 수습의 사령탑 역할을 한 정부. 드높은 시민의식으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를 철저히 실천한 국민들. 모두 박수를 받을 만하다.우리가 신규 확진자 수 0에 접근해 가는 지금..
최악의 선거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놓고 갈릴 뿐, 이번 총선이 1987년 이후 최악의 선거라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다. 유권자의 선택권을 존중한답시고 도입한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위성정당을 내세운 거대양당들의 꼼수로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상태가 되었다. 유권자들은 지역구만이 아니라 이제 정당투표에서마저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나날이 발전하는 한국사회에서 유일하게 거꾸로 가는 것이 정치다. ‘87년 체제’는 청산은커녕 외려 더 강화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한동안 완화되는 것처럼 보였던 지역대결과 이념대립 역시 다시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들은 편으로 갈려 패싸움을 벌이다가 ‘성공의 비결은 역시 반칙과 꼼수에 있다’는 삶의 지혜(?)를 학습하게 될 것이다.한쪽에서 이번 선거를 ‘한·일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