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대 총선에서 기독정당은 ‘종북좌파 척결’을 소리 높여 외쳤다. 이번 20대 총선에선 ‘동성애 반대’ 구호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항상 누군가를 혐오하라는 구호가 개신교 정치의 핵심처럼 보인다.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는, 교과서 같은 데 묘사된 입에 발린 종교관은 어느덧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실제로 최근의 선거구호만이 아니라 한국 근대사에서 개신교는 거의 언제나 증오하고 공격하고 배척하는 존재로 우리 사회 속에 각인됐다. 특히 반공은 한국 개신교의 본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뿌리 깊다. 해서 사랑의 종교라는 표어와 극한적으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대개의 사람들은 개신교가 왜 반공을 그토록 소리 높여 외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한데 이번 선거에서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왜 개..
성심성의껏 할 때의 성심(誠心)과 다르고, 명심보감의 성심(省心)과도 다른 성심(聖心), 그 이름을 나누어 갖는 기관이 여러 곳이다. 가톨릭의 수도회들을 필두로 많은 학교와 병원들이 이 이름을 쓰고 있으며, 이 이름을 빌려 쓴 덕인지는 모르지만 크게 성공한 빵집도 있다. 예수의 마음을 일컫는 이 낯선 말마디가 조선 경향 각지로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우리의 타고난 성품과 무관하지 않다. 천주교 박해기와 그 이후 이 땅을 찾아온 서양 신부들은 “이 나라 사람들은 날 때부터 그리스도인”이라며 탄복하곤 했단다. 죄를 씻는 세례성사가 따로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학생 시절,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렸는데 1911년 2월17일부터 6월24일까지 129일간 조선에 머물다간 어느 독일 선교사의 조선 ..
시골집 앞마당에 핀 노란 민들레 꽃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물들이는 오월 어느 날, 한 여인이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공점엽’, 오욕의 역사가 덧씌운 ‘위안부’라는 이름의 굴레에 묶여 고통과 한으로 이어진 96년의 모진 세월을 견디신 할머니, 그 분이 꽃잎이 지듯 이승의 몸을 벗으셨다. 1920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난 소녀는 16세 되던 해, 돈을 벌게 해 준다는 꾐에 빠져 상해와 하얼빈 등지에서 24세까지 일본군의 성노예로 꽃다운 세월을 치욕과 모멸을 감내하며 살았다. 해방을 맞아 평양을 거쳐 해남에 삶터를 잡았다. 그리고 인연을 만났지만 결혼 8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 홀로 슬하의 아들을 키우면서 외롭게 사셨다. 공점엽 할머니의 영전에 염불기도를 하며 자꾸만 목이 잠겼다. 선한 눈매와 조금은 슬픈 ..
기독자유당은 비례대표 후보 10명을 발표했고, 당선권을 5번까지로 예상했다. 이 중 3번을 받은 이는 동성애 반대 활동을 주로 하는 단체인 한국성과학연구협회 교육국장으로 있는 약사다. 기독자유당의 관계자는 동성애 전문 의료인인 3번 후보와 함께 4번의 후보를 이슬람 전문 변호사라고 소개하면서 원내에서 동성애와 이슬람 문제에 대해 맞서 싸울 든든한 일꾼이라고 주장했지만, 4번 후보는 이슬람 전문가가 아니라 해양법 전문가다. 3번 후보가 얼마나 동성애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외형상 드러나는 활동과 경력만 보면 그만이 이 정당의 비전을 대변할 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기독자유당의 활동에서 반동성애 운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중차대한지를 단적으로 시사한다. 해당 분야의 전문적 활동가..
규제개혁위원회라는 정부기관이 있다. 흡연경고 그림을 담뱃갑 상단에 붙이는 데 제동을 걸었던 곳이다. 왜 그렇게 국민건강 문제를 다뤘을까? 궁금했다. 지난 4월22일자 경고 그림 부착 반대 회의 기록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회의록을 보니 여러 궁금증이 생겼다. 그 하나가 출석위원을 적는 난에 “민간위원장은 회피”라고 쓴 부분이다. 이렇게 중요한 회의를 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았을까? 위원장이 임명될 때 규개위가 낸 보도자료를 보니 그는 당시 김앤장 상임고문이었다. 그리고 김앤장의 홈페이지에는 그가 여전히 고문으로 올라 있다. 게다가 김앤장은 그를 ‘규제개혁위원회 민간 위원장(2014·7부터 현재)’이라고 알리고 있다. 그가 회의 참석을 회피한 이유는 김앤장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담배회사의 소송에서 담배회사를 대리..
무슨 인사를 주고받아야 오늘 나신 부처님이 좋아하실까.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술집에서 술을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교회에서 찬송하는 경건한 부처님들, 넓고 넓은 들판에서 흙을 파는 부처님들, 우렁찬 공장에서 땀 흘리는 부처님들, 자욱한 먼지 속을 오가는 부처님들, 고요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천지는 한 뿌리요, 일체가 부처님이요, 부처님이 일체이니 모두가 평등하며 낱낱이 장엄합니다.” 삼십 년 전의 석가탄신일 법어였다. 삼라만상에 꽉 들어차 계시는 부처님들이여, 영원에서 영원까지 서로 존경하며 축하하자. 이 간결한 인사에 무슨 말을 더 보태랴. 그런데 이 아침 천지가 한 뿌리요, 만물이 한 몸이라는 말씀을 듣자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모두가 평..
이번 봄 학기는 매주 목요일 저녁이다. 서울시민대학 권역별 캠퍼스 글쓰기교실. 올해로 4년째로 접어든다. 봄가을 두 학기, 한 기수에 30명 내외가 들어온다. 교과명은 ‘나를 위한 글쓰기-자기 성찰과 재탄생’. 그간 250여명이 거쳐갔다. 총 10주로 진행되는데 개강 첫날에는 강의실이 북적대지만, 2~3주 지나면 앉는 자리가 정해지고 수강생 수도 고정된다. 큰 기대를 품고 왔다가 이내 실망하거나,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기한다. 내 쪽에서는 수강생이 30명이 넘으면 탈이 나기 때문에 개강 때 일부러 ‘엄포’를 놓는다. 단단히 각오를 하지 않으면 따라오기 힘든 강력한 프로그램이라고, 한 주에 한나절 정도가 아니라 일주일 내내 글쓰기만 생각해야 한다고, 그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
4월의 산색(山色)은 투명하고 청신합니다. 숲이 더없이 아름다운 것은, 숲을 이루는 꽃과 나무가 형형색색 어울려 있기 때문입니다. 큰 나무는 작은 나무를 내쫓지 않고, 화려한 꽃은 소박한 야생화를 깔보지 않습니다. 함께하지 않으면 그저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에 지나지 않지만 더불어 살아가니 큰 숲을 이루고 푸른 산이 되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회장님의 갑질 사건’을 보면서, 우리 인간은 산을 바라보고 감상할 줄만 알지, 산처럼 숲처럼 살려 하지 않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특히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이른바 ‘큰 나무’와 같은 사람들일수록 그렇습니다. ‘인간(人間)’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뜻합니다. 우리 인간도 나무와 꽃처럼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숲처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야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