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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쥐가 난다고 할 때 쥐가 있고 굴을 파서 드나드는 긴 꼬리 들쥐가 있다. 다람쥐나 박쥐는 쥐하고는 한패가 아니지만 도리 없이 이름표를 붙이고 산다. 물속에도 쥐가 사는데 쥐포를 해서 먹는 쥐치가 그것이다. 주둥이가 쥐처럼 길어서 아마 쥐를 갖다가 붙인 거 같다.

 

한번은 목사관 내 처소 다락에 다글다글 쥐가 살았다. 하도 시끄럽게 뛰노는 통에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쥐 끈끈이를 놓기도 하고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으나 가히 신출귀몰이었다. 퇴치 기도를 해도 전혀 안 먹혔다. 아무튼 나는 목사로서도 자질이 여러모로 부족. 쥐가 조용한 순간은 사람이랑 매우 비슷했다. 첫째, 내 이야기에 귀를 모으는 중이거나 아니면 둘째, 내 이야기가 지루하여 조는 중. 셋째는 이제 저 차례, 다른 할 말을 준비하는 순간. 그러던 어느 날 슬그머니 쥐가 사라졌다. 밖에 한가득 놓인 개밥그릇을 치우고, 매달아 놓던 옥수수까지 죄 대피시킨 때문 같았다. 게다가 들고양이가 찾아오면 참치 캔을 따서 공손하게 바쳤다. 사냥꾼에게 대접을 했더니 효과가 금방 생겼다. 쥐들도 별수 없어 줄행랑.

그래도 끝내 고집을 부린 놈이 있었는지 고양이가 놈을 물어다 마당에 보란 듯 놓아둔 적도 있었다. 그냥 이사를 가지 왜 고집을 피워 죽임을 당했을꼬. 고집불통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목수도 절대 고칠 수 없는 집이 바로 ‘고집’이라지 않던가. 고집 센 놈치고 잘되는 꼴을 본 기억이 없다. 이후에도 가끔씩 쥐와 밀고 당기는 동거는 계속되었다.

산골에 살면 쥐와 대면은 일상에 가깝다. 쥐꼬리가 스윽 지나가거나 들쥐가 낸 구멍들을 발견한다. 쥐가 살면 뱀도 살고 고양이도 따라 산다. 높은 하늘에서 정찰하는 매도 보인다. 떼어놓고 나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님이렷다. 쥐들 가운데는 게릴라 쥐들도 있다. 일개 이름 없는 쥐들의 승전보를 기대하는 새해다. 크고 이름난 쥐들이 세상을 온통 갉아먹고 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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