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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 사우나 시설이 좋기로 소문난 동네다. 하지만 산골 누옥이라도 욕실이 일단 잘돼 있고, 같이 사우나 갈 친구도 없어 온천을 소 닭 보듯 하고 산다. 

아부지 생일이라며 아들이 백만년 만에 찾아왔다. 얼치기 실력으로 미역국을 끓이더니 둘이 온천에도 가잔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홀딱 벗고 노천탕에 앉아 비 구경을 했다. 장성한 아이랑 간만에 행복한 순간이었다. 목욕을 마치고 멸치국수에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아이에게 옛날 목욕탕 이야길 해줬더니 배를 쥐고 웃는다.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서로 부탁하여 등의 때를 밀곤 했던 기억들을 들려주었다. ‘때밀이 세신사’에게 맡기지 어떻게 그럴 수 있냔다. 

돈을 아끼는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사람 사이 정이 많았던 시절. 모두가 때밀이가 되어 등에 낀 때를 닦아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 시대를 우애롭게 건너왔다.

경상도 할매들이 교회 앞 평상에 앉아 이런 이야길 했단다. “예수가 죽었다카든데.” “와 죽었다카드나?” “대못이 박혀가 그래 되따 안카드나.” “글마 머리 풀고 다닐 때 내 알아봤데이.” 지나던 할매가 앉더니 “예수가 누꼬?” “며늘아가 아침저녁으로 아부지 아부지 캐사이 바깥사돈 아니겠나.” “보이소. 글마 거지다. 손발에 때가 껌디이같이 끼고, 산발하고 다니질 않트나.”

예수도 때를 밀려고 자주 물가로 나갔다. 늙은 까마귀가 우는 물가에는 때밀이가 서 있었을 게다. 인생은 머잖아 염사가 기다리고 있어 시신을 정성껏 닦아준다. 

중국 허난성의 소설가 옌렌커의 소설 <연월일>을 기억한다. 셴 할아버지와 눈먼 개는 같이 오줌을 누고 몸을 닦는다. 늑대와 대치하면서 옥수수 밭을 지키다가 끝내 눈을 감는다. 그들의 죽음은 매우 엄숙했다. 개와 정이 들어 함께하다가 따로따로 죽는 장면은 서럽고도 쓸쓸했다. 마지막으로 눈곱을 떼어주면서 할아버지가 우는 소리 같은 비바람소리. 

오늘은 때가 낀 세상을 씻어내는 바람과 빗소리가 요란한 하루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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