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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순간. D-14일. 대략 두 주 정도 남았다. 대통령이 행정부를 대표하여 헌법개정안을 발의한다. 온라인에서 의견수렴이 한창이다.

국민헌법 홈페이지엔 28가지 개헌의제가 소개되어 있다. 찬반투표와 댓글달기가 가능하다. 약 25만명의 국민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개헌의제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찬성표와 댓글을 간단한 셈법으로 확인해 보았다. 그 결과는 의외였다. 국회에서 주로 언급되던 권력구조개편도, 정부안으로 유력해 보이는 지방분권도, 시민사회가 중시하는 생명권 등 기본권도 아니었다. 상단 맨 위쪽을 차지한 개헌의제는 ‘검사로 한정된 영장 신청 주체를 법률로 완화하자’는 내용이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혹시 촛불민심이 이전에 논의되고 있던 한국 사회의 개혁과제를 새롭게 재구성한 것은 아닐까. 낡은 체제를 바꾸는 데 무엇이 좀 더 중요하고 시급한지 재확인시켜준 결과인지도 모른다.

2016년 말 2017년 초의 추운 겨울, 광장에서 촛불을 밝혔던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던질 수 있는 질문. 왜 우리가 촛불을 들어야만 했을까. 만약 검찰이 국정농단을 외면하지 않고 정의의 심판대에 올렸다면, 촛불이 그렇게 타 올랐을까. 물론 국민헌법 홈페이지의 개헌의제에 대한 관심 정도가 국민전체의 여론으로 대표될 순 없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필요도 없다. 촛불도 처음에 그랬다. 수천명에서 수만명으로, 수만명이 수십만명이 되고 수백만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기소독점 완화에 대한 세 가지 논거가 추가될 수 있다. 첫째, 기소독점이 가지는 한계다. 현행헌법은 체포·압수·수색을 위한 영장의 신청을 검사만 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기소는 법원의 재판절차 개시를 의미한다. 바꿔 말해, 기소하지 않으면 법원에서 시시비비를 다툴 수 없다. 예컨대 최고 권력자의 부정행위도, 토호와 결탁한 지역의 이권개입도, 각종 사회경제적 차별도 기소되지 않으면 처벌받지 않는다. 둘째, 검찰에 대한 불신이다. 검찰의 권력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법률에서 영장신청 주체를 다양화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검찰의 권력화는 스스로를 정치권력과 경제금권에 노출시켜 허약체질로 만든다. 셋째, 독점 그 자체에 대한 보편적 거부감이다. 이 거부감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인 국민정서다. 독점은 시장경제적 측면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성장을 저해한다. 또 독점은 사회민주적 측면에서도 경쟁이 필요한 주체의 동등한 기회를 박탈한다. 어떤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지 않다면, 그는 경제적 자유도 평등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경제적 자유가 불평등하다면, 법 앞에 평등하기 어렵다. 독점 앞에 자유와 평등은 동병상련이고 무력화된다. 기소독점뿐만이 아니다. 기본권, 권력구조, 지방분권 등 대부분의 개헌의제는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 권한을 분산시켜 인간의 이질성을 고려하고, 자유와 평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른 한편에선 현행헌법 그대로 검사의 기소독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영장신청 주체가 확대되면 인권침해가 가중될 우려가 있고, 영장신청 주체를 제한하는 것은 검찰 권한의 보장이 아니라,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규정한 것이므로 현행헌법 유지가 바람직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기소독점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했고, 기본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미 심심찮게 봐왔다. 그 때문에 기소독점이 기본권을 보장하기보다 기본권의 중심이 되는 자유와 평등을 비롯한 생명권, 사회권, 환경권, 정보권 등의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개헌여론에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신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은 내용과 과정 모두 국민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되는 국민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대통령도, 국회도, 시민사회도 아닌 국민이 원하는 개헌. 다 내주더라도 하나의 개헌안만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일까.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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