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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백신 주사기를 바꿔치기해 접종한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 글이 퍼지자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일은 낯설지 않다. 2010년 천안함을 한국 정부와 군 당국이 고의로 침몰시켰다고 주장한 인터넷 언론인이 재판에 넘겨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당국이 일부러 희생자들을 구조하지 않은 것처럼 꾸민 거짓 카카오톡 대화 화면을 퍼뜨린 사람,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지역 병원에 입원했다고 글을 올린 사람도 법정에 섰다. 각각 무죄, 실형, 집행유예를 받았다. 정부 활동에 의문을 제기한 많은 이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려 정부 정책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믿어서’ ‘미워서’ ‘재미로’ ‘불안해서’ ‘이렇게라도 해야 정부가 나설 거 같아서’…. 글을 작성하거나 퍼뜨린 이유는 다양했다. 정부가 수사에 나선 이유는 비슷했다.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정부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방해해서’였다. 수사가 시작되면 문제가 된 글의 확산은 잠시 잠잠해지지만 일부 시민들의 마음속에는 정부를 향한 미움과 불신이 더 깊고 단단하게 뿌리내렸다. ‘천안함 음모론’ ‘세월호 음모론’ 등이 오랜 시간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다.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온라인상의 거짓된 글’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모범답안을 내놓은 바 있다.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다.” 대법원은 “정부와 공공기관은 명예훼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결해왔다. 진실은 수사기관이 아닌 공론장에서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전례 없는 코로나19 국면에 이 모범답안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백신에 대한 불신 조장은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저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시대에 들끓는 여론,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그렇다고 ‘불편한 소문’이 돌 때마다 수사기관부터 동원하면 불신은 제대로 해소되지 않는다. 시민에게 겁을 주고 기묘한 죄목을 찾아내 처벌하는 수사기관의 기술만 발달한다. 문 대통령을 비난하는 대자보를 학교에 붙인 대학생이 건조물침입죄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일도 있었다.

수사의뢰부터 신중했으면 좋겠다. 관심이 수사와 처벌로 옮겨가면서, 시민의 분노는 수사기관의 그물망에 걸린 한두 사람에게 집중된다. 수사기관은 권한을 남용할 가능성이 커지며, 정부의 책임은 가려진다. 정부가 문제가 터지면 수사의뢰부터 하는 관행을 재고해야 할 이유다.

박은하 | 사회부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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