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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14일 ‘경향신문’에는 최경환 경제팀에 “더욱 과감한 소득 분배 정책”을 요구하는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의 칼럼이 실렸습니다. 그는 칼럼에서 “지금까지 경제성장은 오로지 투자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며, 분배와 소득 향상은 오로지 그 결과로 생겨나는 것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그 어떤 정책을 쓴다고 해도 분배 구조를 바꾸어 대다수 국민들의 소득 흐름을 개선시키지 않는다면 백약무효이거나 일시적인 미봉책으로 끝날 만한 상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홍 소장은 “소득 분배 구조를 개선하려면 응당 실질임금을 인상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최저임금의 인상은 물론 노·사·정의 많은 논의와 합의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대책이 한계 상황에 있는 기업들을 어렵게 하거나 수출 경쟁력과 투자 의욕에 해롭게 작용한다는 우려가 크다면, 그 다음에는 체계적인 증세를 통해 복지 정책을 강화해 국민들의 실질 소득과 구매력을 고르게 늘리면 된다”는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그즈음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베 이타루, 더숲)였습니다. 시골에서 빵집을 운영하던 저자는 돈이 지닌 부자연성과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마르크스 자본론’과 ‘천연균’에 비유해 하나씩 풀어냈습니다. 저자는 “자본주의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부패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는 주범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돈과 경제를 ‘부패하게’ 만들어버리면 어떨까? 이것이야말로 발효의 힘을 빌려 발효와 부패 사이에서 빵을 만드는 나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발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깨달은 저자가 운영하는 시골빵집은 “단순함을 지향”했습니다. “만드는 자에게는 직업으로서, 소비하는 자에게는 먹거리로서의 풍성한 즐거움을 지키고 키워가기. 그러기 위해 비효율적일지라도 더 많은 손길을 거쳐서 공 들인 빵을 만들고, 이윤과 결별하기. 그것이 부패하지 않는 돈을 탄생시킨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달 출간된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동아시아)는 “예전부터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휴면자산을 재이용함으로써 경제 재생과 공동체의 부활에 성공하는 현상”을 말하는 ‘산촌(里山)자본주의’가 우리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버려진 산에 널린 나뭇조각이나 톱밥 등 목재 폐기물을 압축해서 펠릿(pellet)이라는 연료를 만들어 난방과 취사를 하고, 목재 폐기물로 건축재를 만들어 고층건물을 짓기도 하고, 경작 포기 농지를 활용해 물고기를 키우거나 지역 토산물을 재배하고, 지역의 노인들이 텃밭에서 키운 채소나 단호박, 감자 등을 지역의 복지시설이 구매하고, 빈집을 노인들의 쉼터로 활용하고, 노인들이 쉼터 옆에 있는 보육원의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 등은 ‘산촌자본주의’의 여러 모습입니다.
금융 전문가와 NHK 취재팀인 저자들은 ‘산촌자본주의’가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돈의 순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전제하에서 구축된 ‘머니자본주의’ 경제 시스템과 함께 돈에 의존하지 않는 산촌자본주의를 서브 시스템으로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인간 생활의 필수품인 물과 식량과 연료를 어렵게 번 돈으로 구매할 것이 아니라 “산의 잡목을 땔감으로 이용하고, 우물에서 물을 긷고, 계단식 논에서 쌀을,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최근에는 사슴도 멧돼지도 많이 늘어나서 사냥을 해도 다 먹지 못”하는 마당이니 이와 같은 “선조들이 산촌에서 부지런히 쌓아올린 숨겨진 자산”을 활용하면 사람을 부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공황의 위기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수출에 의존해 고도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과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수출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그러니 내수시장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크게 기대할 바가 없고, 고령화로 인간의 수명은 늘어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증폭되니 불안감을 느낀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고령자가 평균 3500만엔의 돈을 남겨놓고 죽는다고 합니다. 연간 100만명이 35조엔의 돈을 써보지도 못한 채 다음 세대로 넘겨준다고 합니다.
저자들은 “돈만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든 것, 즉 “경제적 번영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일본인이 느끼는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동일본 대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머니자본주의’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니 이런 ‘궁극의 보험’을 생각해내는 것 같습니다. 산촌자본주의야말로 사람과 자연의 유대를 통해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일이니까요.
경제성장 정책이 사실상 좌절된 박근혜 정부는 최근 강력한 노동시장 개혁을 예고하면서 “청년실업은 기성세대 책임”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펼쳤습니다. 정부는 이제 이런 혹세무민의 논리로 세대갈등을 조장하지 말고 ‘부자 감세’부터 포기하고 소득 재분배를 통해 내수 소비시장을 키우는 정책으로 전환하는 한편, ‘산촌자본주의’를 활성화할 수 있는 여건 조성부터 서두르실 것을 감히 권합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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