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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미포만이 꿈틀대고 있다. 1987년 7·8·9 노동자 대투쟁으로 민주노조 건설의 전국적 출발점이 되었던 이곳. 다시 변화의 물결이 시작된 계기는 하청노동자 노조 가입운동이다. “모이자, 5월14일!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노동자 손잡고 우리의 고용과 임금 우리가 함께 지킨다!”

지난 4월 말부터 시작된 이 운동에는 현대중공업의 원·하청 노조가 함께하고 있다. 정규직노조 위원장과 하청노조 위원장이 매일 정문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선전전을 벌인다. 1987년 7·8·9 대투쟁과 민주노조 결성에 참여했던, 머리 희끗희끗한 정규직노조 위원장이 든 손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정규직 노동자가 우산이 되겠습니다. 하청노동자 모두 지금 바로 노조가입!”

노동조합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데 왜 우산이 필요하다는 걸까? 그 이유는 재벌을 비롯한 자본가들이 헌법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하청노동자의 78.7%가 “노조에 가입할 의향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 답변을 한 하청노동자들의 75.7%가 “해고와 블랙리스트가 두려워서 (노조 가입을)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노조 가입이 하청노동자 권리 보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하청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하면 치러야 할 대가와 희생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 노조가입에 따르는 희생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게 헌법 제33조의 내용인데, 헌법 따위는 간단히 무시해 버리는 게 재벌과 자본 아니던가!

아니나 다를까 노조 가입운동이 벌어지자 “노조 가입하면 출입증 말소된다”, “업체 망한다”는 협박이 들어온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헌법에 따라 정부와 관계부처가 불법행위를 하는 사용자를 엄벌에 처해야 하나 폭로와 고발을 해도 늦장대응은 기본이요, 조사를 한다 해도 사용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경우가 태반이다. 노동부가 뒷짐을 지고 있으니,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청노동자들의 우산이 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하청노동자 노조가입운동을 펼치는 가슴 벅찬 이 사업의 배경에는, 더 이상 방치하다가는 정규직도 무사할 수 없다는 냉철한 자각이 놓여 있다. 정규직이 일손을 놓아도 조선소에서 배가 만들어질 정도로 엄청나게 늘어나버린 하청노동의 규모, 그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정규직의 권리도 지켜질 수 없다는 점은 평범한 노동자들의 눈으로도 쉽게 확인되는 것이었다. 이미 현대중공업은 올해 초 사무직 과장들 1000명을 내보낸 데 이어 정규직 여사원들까지 구조조정에 나선 상황 아니던가.

장연의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연대팀장이 26일 서울 소공동 서울중앙우체국 옆 광고탑에서 80일간 고공농성을 종료한 후 크레인을 타고 광고탑에서 내려와 병원을 가기위해 구급차에 오르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렇다. 규직에 대한 해고를 쉽게 하고, 취업규칙을 나쁘게 변경하는 것도 쉽게 하겠다는 사악한 정권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 옆의 장그래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박근혜 정권은 정규직에 대한 쉬운 해고를 밀어붙이려 하지만, 이에 맞서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 바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을 대대적으로 조직하는 길에 있음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자각하고 나선 것이다. 1987년이 그러했듯이 미포만은 신호탄 역할이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냉철한 자각 속에 벌이는 하청노동자 노조가입운동은, “지금이 바로 기회”라는 시그널이 되어 전국의 하청노동자들 가슴에 전달될 것이다. 얼마 전 현대위아 광주공장에서 하청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가입해 노조를 결성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5월14일 첫 번째 집단가입을 예고해놓은 미포만 하청노동자들의 꿈틀거림을 가슴 벅차게 응원하자. 그리고 이어질 하청노동자들의 전국적 움직임을 기대해본다. 오늘 아침에도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 노조가입을 홍보하는 LED 차량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하청노동자들도 노동조합 할 수 있습니다!” 나서자. 바로 지금이 기회다.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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