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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 대체 지금은 얼마 받는데 만원으로 올려달라는 건가?” 어르신들이 질문을 건넨다. 올해 최저시급 5580원, 월 116만원. 이걸로는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최소 2~3명으로 구성된 가족 생계를 책임지기엔 턱도 없다고 설명하면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친다. “그렇지. 못해도 한 달에 200만원은 받아야 입에 풀칠은 하지.”

지난 16일부터 이번 주말까지 전국을 돌며 ‘장그래 대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제조업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건설현장의 목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그리고 미래의 장그래라 할 수 있는 대학생 등 다양한 구성의 노동자들이 영남권을 거쳐 충청권, 강원도와 수도권을 누비고 다닐 예정이다.

형광색 조끼에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장그래에게 노동조합을”이라는 슬로건을 달고 선전물을 나눠주면, 무뚝뚝해 보이던 시민들도 다가와 반갑게 대화를 나눈다. 퇴근 후 먹자골목에 들어가면 선전물을 받아든 젊은층은 당장이라도 최저임금 1만원이 된 것마냥 웃음보가 터진다. 메르스 여파로 길거리와 시장에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행진단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참 따뜻하다.

경총을 비롯한 자본가들은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면 영세상인들 다 망한다고 떠들지만, 이게 웬걸! 재래시장에 상인들도 “욕 봅니다” “수고하세요”라며 반갑게 맞이해준다. 서민들의 얇아진 지갑과 메르스 때문에 매출이 뚝 떨어졌는데,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면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제철, 골리앗처럼 서 있는 2개의 거대한 공장을 방문했을 때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힘을 합해 하청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최저임금 1만원이 된다고 문제가 해결됩니까? 지금 5580원 안 지키는 사업장 많습니다. 이걸 지키게 만들려면 노동조합이 있어야죠.”

정부는 SK하이닉스 사례를 원·하청 상생의 모범처럼 떠들지만, 장그래 행진단은 현대중공업과 현대제철에서 진짜 원·하청 상생을 만났다. 고기를 잡아줄 생각 말고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즉, 비정규직 스스로 노동조합으로 뭉쳐서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짜 원·하청 상생이라는 것이다.

서울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전면 파업에 들어간지 36일째 되는 27일, 서울여대 본관앞에서 장그래살리기 운동본부 회원들이 파업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파업중인 청소노동자들의 발에 새 양말을 신키고 있다. (출처 : 경향DB)


“장그래를 잘 몰랐죠. 그런데 행진하다보니 장그래가 바로 우리 아이들 얘기더군요.” 행진단에 함께한 나이 지긋한 건설노동자의 소감이다. “단군 이래 지금이 최고로 잘사는 시대인데, 왜 우리 아이들에겐 희망과 미래가 없는 삶이 기다리고 있느냐 말입니다.”

현대차에서는 20대 젊은 노동자들을 계약직으로 채용했다가 2년 만에 해고하는 일이 늘 벌어진다. 글자 그대로 장그래인 이들의 숫자만 현대차 생산공장 내에 3000명이 넘는다. 그렇게 해고된 노동자 한 명이 장그래 대행진에 함께하면서 말한다. “지금은 저 혼자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3000명 넘는 동료들을 노조로 조직해볼 겁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현대차와 23개월 동안 16차례나 쪼개기 계약을 했다는 20대 ‘미생’의 청년 노동자가 ‘완생’을 꿈꾸며 전국을 행진한다. 이들이 서울에 입성하는 27일쯤이면 최저임금 결정시점이 임박해온다. “사용자들이 내년에도 5580원 동결안을 냈다고? 니들 월급은 얼마 받는지부터 공개해봐!” 이제 시민들의 입에서도 이런 얘기가 오르내리고 있다. 장그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주범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는 거다.

식당, 경비, 청소노동자도 정규직으로 일하는 갑을오토텍, 장그래의 아픔이 없는 이 공장에 민주노조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 경찰, 특전사 출신을 채용해 살인적인 폭력으로 민주노조를 없애고 나면, 마음대로 쓰다 버리는 장그래들이 양산될 것이다. 행진단은 온나라의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묻고 있다. 장그래 살리기냐, 장그래 늘리기냐. 판단이 섰다면 함께 행진하자고.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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