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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 바람이 얼음처럼 찼던 초겨울 아침이었다. 지하철역 바깥으로 나오니 여느 때처럼 출구에 전단을 나누어주는 분들이 서 계셨다. 요리조리 전단 받기를 피하던 중에 강한 포스로 종이를 내미는 분과 맞닥뜨렸다. “죄송합니다” 웃으면서 옆으로 비켜 걷는데, 스치는 귓가로 이렇게 나직이 되뇌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웃어. 썅, 좀 받으라고.”

대학 입학을 앞둔 열아홉의 겨울, 친구들과 처음 번화가로 나들이해본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골목마다 미용실과 피부관리실, 어학원 등이 즐비했던 그곳에서 홍보용 전단을 쥐여주려는 아주머니들과 그것을 받지 않고 휙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당시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가진 전단을 전부 나누어주기만 하면 저분들은 그날 치 품삯을 받으실 텐데, 그러면 추운 날 조금이라도 일찍 귀가하여 몸 녹일 수 있을 텐데, 종이 한 장 받아가는 것이 무엇이 그리 힘들까. 필요 없더라도 일단 받고 나서 나중에 버리면 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짐했다. 길에서 전단을 나누어주면 전부 받자고 말이다.

실제 여러 해 동안 의지적으로 그렇게 행했다. 받지 않으려 피하는 행인들을 밀치고 “그걸 그냥 저한테 주세요”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거리를 걸을 때면 품에 전단이 한 아름씩 쌓였다. 서너 장을 받아들면 ‘받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집중적으로 안겨주셨던 것이다. 더욱이 한동안 서울시 미화정책이 바뀌었던지, 노상에 휴지통이 대거 줄어드는 바람에 전단 10여장을 끌어안고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점차 대상 모를 짜증과 미움이 내면에서 솟구쳤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진정으로 누군가의 고단한 일손을 덜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스스로와의 첫 약속을 지키려는 강박 때문일 텐데, 대체 이것이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그리하여 언젠가부터 전단 받는 것을 멈추었다. 대신 마주할 때면 할 수 있는 한 예의 바르게 웃으며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곤 했다. 그렇게 지나칠 수 있게 되니 내 쪽에서는 몸도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한데 그 웃음이 바로 그 아침, 전단을 나누어주던 어떤 분의 마음을 할퀴었던 셈이다.

그날 온종일 생각했다. “죄송합니다”라며 웃었던 것이 왜 상대방의 심경을 불편하게 하였을까. 그리고 나는 무엇 때문에 웃음을 지었을까.

사실 후자의 답이야 자명했다. 누군가에게 무정하고 싸늘한 표정을 내보이기 싫은 자기애적인 위선이었을 테다. 그런데 이에 대한 부끄러움과는 별개로, 여전히 무언가 생선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다. 전자, 즉 무엇이 그분의 마음을 그토록 상하게 하였는지는 나의 위선과는 별개의 문제인 듯했기 때문이다. 위선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의 성찰마저 이쪽의 사치스러운 감상일 뿐 막상 상대방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분에게 더 절실했던 것은 어쩌면 웃음에 담긴 진정성이 아닌, 짜증스럽게나마 전단 한 장 더 가져가는 손길 아니었을까.

각종 광고전화가 걸려올 때면 어떻게든 ‘덜 모질게’ 얼른 끊으려는 이쪽과 설령 모진 말을 듣더라도 조금이나마 길게 통화를 이어가야만 하는 저쪽 사이의 일분일초를 둔 실랑이처럼, 어쩌면 이 또한 그런 성질의 문제일지 모른다. 개인의 인격이나 진정성으로만 환원되지 못할, 이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로서 벗어나기 어려운 관계구도 같은 것 말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신영복 선생은 모로 누워서 칼잠을 청해야 하는 비좁은 감옥의 잠자리가 옆 사람을 단지 섭씨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하였던 비정함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곳은 찜통감방처럼 타인의 살갗이 닿으면 증오가 솟아나는 극한상황도 아닐진대, 세상은 왜 ‘어떻게든 빨리 상대방을 떼어놓고 싶은 자’와 ‘어떻게든 상대방을 붙잡고 시간을 끌어야 사는 자’의 대립구도로 우리네 삶을 밀어 넣는 것일까. 거기서 나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소영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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