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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이제는 누구나 입에 올리는 단어가 됐다. 그만큼 세상에 널리 퍼져 있고,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다. 실제로 얼마나 그런지는 따로 따져볼 문제다. 그와 무관하게 지금 많은 사람들이 가짜뉴스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근래에 접한 가짜뉴스의 사례를 들어보라 하면 대다수가 별 어려움 없이 답할 터이다. 언론 보도뿐 아니라 유튜버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얘기, 정치인의 목소리에다 오가다 들은 헛소문이나 괴담류까지 망라될 것이다. 그런데, 믿지 못할 혹은 믿어서는 안 될 메시지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형식과 내용은 제각각이다. 과연 가짜뉴스란 무엇일까.

이른바 가짜뉴스는 시민사회에 해롭다. 구성원과 사회 전체에 피해를 끼친다. 사실과 진실을 덮고 거짓 또는 왜곡된 정보를 퍼뜨려 건전한 공론 형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가짜뉴스에 대한 단속과 규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통용되는 가짜뉴스의 개념이 광범위하고 모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짜뉴스 피해 구제를 위한 입법을 추진한다면, 가짜뉴스가 무엇인지부터 명확히 규명하는 것이 선결 과제가 되어야 할 이유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짜뉴스는 모두 같은 실체를 가진 것일까.

가짜뉴스의 심각한 폐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이루어져 있으나 가짜뉴스를 바라보는 시선과 입장은 각기 다르다. 누구나 진위를 쉽게 판별할 수 있는 거짓말·빈말·헛소리·요설·풍설·협잡 등도 물론 있지만, 요즘 일컬어지는 가짜뉴스의 상당수는 진영 논리에 따르는 ‘내게 불리한 뉴스’ ‘내 입맛에 안 맞는 정보’를 가리킨다. 엄밀히 따지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릴 수 없는 정보까지 손쉽게 가짜뉴스로 치부되는 것이다. 가짜뉴스의 해악과 별개로 이처럼 가짜뉴스 프레임을 악용하는 것도 중차대한 문제다.

가짜뉴스라는 용어는 2000년대 초 학계에서 나오기 시작해 소셜미디어의 성행과 더불어 2010년 무렵 널리 사용되다가 2016년 미국 대선을 계기로 전 세계에 확산됐다. 대선 과정에서 가짜뉴스 시비가 끊이지 않았는데, 당시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성 언론을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거짓말쟁이’라 지칭했다. 그의 진영에서는 ‘대안적 사실’이라는 기묘한 말을 끄집어내 트럼프의 거짓말과 왜곡을 포장하기도 했다. 그해 11월 뉴욕타임스는 동유럽 조지아의 대학생이 돈벌이를 목적으로 트럼프를 옹호하는 내용의 거짓 기사를 온라인에 올려 수천달러의 수입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가짜뉴스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꾸며낸 뉴스’로 정의되는 계기였다.

트럼프가 말한 ‘페이크 뉴스(fake news)’가 ‘가짜뉴스’로 그대로 옮겨져 들어온 국내에서는 2017년부터 학계의 연구와 논의가 본격화했다. 이전까지 온라인상의 허위 정보는 기존 기사를 불법 복제한 ‘짝퉁 뉴스’쯤이었는데 그 범주를 넘어선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된 바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가짜뉴스는 ①정치·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②고의로 왜곡·날조하고 ③언론 보도로 가장하는 거짓 정보로 대략 정의돼 있다. 언론 매체의 포괄적 실수에 따른 오보나 오인, 근거 없는 소문, 풍자 행위와는 구별한 것이다. 하지만 학계에서도 가짜뉴스 용어에 대한 이 같은 정의가 실제 통용되는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짜뉴스에 ‘내 마음에 안 드는 기사’ ‘내가 볼 땐 거짓말’까지 포함되고 있어서다. 반드시 단속·퇴출하고 마땅히 피해 구제를 해야 할 가짜뉴스란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 더욱 엄밀히 정의되는 게 급선무다. 누군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과 요건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9년 시민 1200명에게 설문한 결과를 보면 가짜뉴스에 대한 인식을 일부 알 수 있다. 가짜뉴스로 생각하는지 여부를 물은 8개의 보기 중에서 메신저 등을 통해 유포되는 속칭 ‘지라시’(92.8%)와 뉴스 기사 형식을 띤 조작된 콘텐츠(92%)가 “그렇다”는 응답 비율이 가장 높았다. 협의의 가짜뉴스가 1위와 비슷한 2위인 셈이다. 그다음으로, 사실 확인이 부족해 생긴 언론 오보(89.6%), 선정적 제목을 붙인 낚시성 기사(87.2%), 클릭 수를 높이려고 짜깁기하거나 같은 내용을 반복한 기사(86.8%) 등도 대다수가 가짜뉴스로 간주한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언론사가 내는 오보나 돈벌이용 저질 기사도 가짜뉴스급으로 인식된다는 것은, 가짜뉴스가 무엇인지 따져보는 것과 별개로, 언론이 뼈아프게 자성해야 할 일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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