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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훈 | 양산대 교수·경영학
필자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안사정으로 어머니와 강제적으로 떨어져서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산 적이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인자하시어 나를 아껴 주셨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동내 어른들을 볼 때마다 저의 어머니 만나게 해달라고 계속 부탁을 드렸더니, 오는 보름날 밤 8시까지 두 마을 중간에 있는 큰 밭의 중간에 큰 소나무 밑으로 나오라고 했다.
(경향신문DB)
설레는 마음으로 8시에 소나무 밑으로 같더니 어머니는 벌서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 품에 안겨 눈물을 흐렸다. 어머니가 만들어 오신 개떡과 보리떡, 삶은 계란 등을 맛있게 먹으면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나?” “나는 과수원 할래요. 과수원해서 돈 많이 벌어 어머니께 빨리 효도하고 싶어요” 그래 내 아들 훌륭한 꿈을 가졌구나“하고 어깨를 툭툭 쳐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앞으로 이 곳으로 나를 만나러 와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만약 나를 만나는 것이 발각되면 집안에 큰 일이 난다고 하시면서 당신이 연락하기 전까지는 찾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소나무 밑에서 어머니와의 즐거운 만남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고이 간직할 수 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고 슬하에 2녀를 잘 키워 행복하게 살고 있다. 최근에 위암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고 있으나, 어머니께서 소나무 밑에서 주었던 사랑과 용기는 나의 삶에 힘을 더해주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더욱이 어머니가 암으로 고통스럽게 돌아가실 적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고 죄스럽다.
우리시대 대개의 어머니들은 어머니는 고통과 아픔을 가슴에 앉고 살았다. 그래서 한국의 어머니들만이 겪는 ‘화병’이 의학적 용어로까지 정착된 것이 아니겠는가?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고난과 통한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인내하신 어머니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 눈물은 통회의 눈물이자 희망의 눈물이다. 우리 모두는 부모로부터 무한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식이자, 또한 어떤 역경 속에서도 무한사랑을 베풀수 있는 부모이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너무 가까워서 잊고 있었던 부모나 형제의 손을 잡아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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