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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20만여명의 방과후 돌봄을 담당하는 전국 초등돌봄전담사들이 오는 8~9일 2차 파업을 예고해 학부모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코로나19로 전업주부들의 자녀돌봄 시간은 하루 12시간38분으로, 종전보다 3시간30분이 늘었다고 한다. 발달장애 아동의 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부모 없이 끼니를 챙기려던 아이들이 숨지는 사례까지 발생하며 코로나 돌봄공백은 턱밑까지 차올랐다. 한편에선 보건의료·돌봄 노동자, 택배기사 등 ‘필수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가 구성됐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돌봄은 더 자주 더 긴급하게 호출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사들을 보면 심란해진다. 돌봄이 그저 고통스러운 노동이나 최대한 길게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야 할 짐처럼 느껴져서다. 돌봄의 대상자들이나 맡기는 사람이나 모두 마음이 편치 않다. 돌봄이 원래부터 이렇게 괴로운 것이었을까.
‘돌봄(care)’은 독특한 단어다. 돌봄노동의 핵심적 차별점은 돌봄을 주고받는 이들의 ‘관계성’이다. 유독 돌봄노동자에게만 사랑으로 돌봄을 수행하라고 기대하고, 돈을 목적으로 하면 돌봄의 질이 훼손될 것이라 생각한다. 제대로 경제적 가치를 매기기도 어렵다. 돌봄이 여성의 일로 여겨진 건 20만년 인류 역사 속에서 불과 200여년 전이다.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가정 안팎의 일이 분리됐다. 바깥일을 하는 남성은 자연스럽게 돌봄에서 배제됐다. 가족구조가 변하며 돌봄은 또 한번 ‘사회화’라는 격변을 맞는다. 가정에서 무급으로 담당하던 아이돌봄, 간병, 노인과 장애인 수발 등을 비교적 긴 시간에 걸쳐 사회로 넘긴 서구 국가들과 달리, 한국에선 2000년대 중반 이후 각종 사회복지서비스가 필요할 때마다 땜질하듯 우후죽순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민간 비중이 90%를 넘고 헐값으로 자리 잡은, 이른바 ‘한국식 돌봄의 사회화’였다. 2017년 전 산업 노동자 월평균 임금은 345만원이었는데, 사회서비스업은 175만원에 불과했다. 그마저 민간 중개업체가 노동자에게 갈 몫을 떼어먹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도급 기업을 착취하는 악덕기업들의 ‘가격 후려치기’ 행태와 다를 바 없다.
돌봄은 사회구성원들이 안심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감싸주는 물, 공기와 같은 것이다. 한번 파괴되면 피해를 복구하기 어려운 환경처럼, ‘돌봄 결손’이 심각해지면 대책 마련은 더욱 어렵다. 여성주의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돌봄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슴’에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8년 <돌봄노동, 돌봄일자리 - 괜찮은 일자리의 미래를 위하여>를 발간해 유·무급 돌봄노동이야말로 고령화 사회, 가족구성이 변하는 미래사회의 핵심 의제로, 좋은 돌봄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하기 싫어서 떠넘기는 직업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든 일하며 만족감을 느끼고, 생계도 보장되며 경력이 쌓일수록 인정받는 괜찮은 일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초등돌봄의 이상적 모델로 꼽힌 서울의 ‘중구형 돌봄교실’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중구형 돌봄교실은 오후 5시에 끝나는 다른 돌봄교실과 달리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되며, 돌봄전담사가 오전·오후반으로 나뉘어 근무한다. 학부모 설문 응답자 99.4%가 만족했다. 핵심은 예산을 아끼지 않고 전액 구비에서 지원해 각 주체 모두가 원하는 질 높은 돌봄을 구현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필수노동자라는 달콤한 말과 응원 릴레이가 아니다. 시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양질의 돌봄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구체적인 예산을 확보하고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시민들에겐 친밀한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을 부여해야 한다. 돌봄의 사회화를 넘어, 이젠 권리로서의 돌봄을 얘기할 때다. 이를 위해 시민 ‘모두가 열외 없이’ 돌봄에 참여하는 ‘돌봄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는 돌봄의무에서 면제되고, 돌봄이 낮은 지위의 약자들이 하는 일이 될 때, 돌봄의 가치는 함께 떨어진다. 돌봄에 무임승차하는 것은 창피하고 무책임한 일로, 다른 이를 돌보는 일은 공동체를 살리는 가치 있는 일로 인정받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어느 순간 타인에게 의존해야 하는 약한 존재들이다. 가정과 사회가, 남성과 여성이 돌봄을 기꺼이 나누는 ‘돌봄중심 사회’로의 전환을 뜨겁게 토론할 때, 잊혔던 돌봄의 온기와 가치도 회복할 수 있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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