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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석이 따로 없네 프랑스 테너 스테파네 세네샬(왼쪽)이 지난 24일(현지시간) 파리 자택 발코니에서 주민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 프랑스에선 17일부터 전국에 이동금지령이 내려졌다. 파리 _ EPA연합뉴스

달고나커피는 뿌듯해서 맛있다. 아이들도 좋아한다. 너도나도 팔 빠질세라 400번 이상 휘저으며 웃고, 추억의 맛에 공감하며 즐거워한다. 이 소소한 간식 만들기가 코로나시대 ‘집콕’ 놀이의 대표 아이콘이 됐다.

집콕은 모두의 얘기다. 내 집, 이웃집뿐 아니라 온 나라, 전 세계가 그렇다. 엄마아빠는 재택근무, 아이들은 온라인개학, 대학생은 원격수업. 필요한 물건은 온라인 주문해 배달받는다. 외롭지만 씩씩하게 버텨가고 있다. 달고나커피처럼, 답답한 일상을 웃음으로 극복하는 재밋거리도 잘 찾는다. 최근 호주에서 시작돼 SNS를 통해 번지고 있는 ‘쓰레기통 문밖 외출’이 기발하다. 쓰레기통 비우러 집 밖에 잠깐 나가는 것만도 신나는 외출이니 개성껏 차려입고 나서보자는 아이디어다. ‘빈 아이솔레이션 아우팅’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페이스북 페이지에 원더우먼·슈퍼맨 등 개성만점 옷차림으로 쓰레기 버리러 가는 이들의 사진이 줄을 잇고 있다.

코로나시대의 일상은 비대면(언택트)과 거리 두기로 요약된다. 좋지 않은 쪽으로 말하면 고립과 격리다. 이달 초 서울에서 열린 ‘유튜브 결혼식’이 비대면의 전형이다. 신랑신부만 예식장에 서고 부모와 하객은 온라인 생중계로 예식을 지켜봤다. 남성은 월·수·금, 여성은 화·목·토요일에만 외출을 허용한 남미 페루의 ‘성별 외출 2부제’는 거리 두기의 극단적인 사례다. 둘 다 코로나시대를 기억할 장면으로 남을 만하다.

코로나19 때문에 바뀐 일상은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비대면과 거리 두기의 일상은 효율과 질서를 알려줬다. 굳이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아도, 정해진 규칙과 시스템 아래서 각자의 활동을 별 차질 없이 영위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비대면 소비·서비스·산업 분야가 급속도로 확장했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디지털 기반의 비대면 플랫폼이 각광받을 미래의 모습을 성큼 앞당겨 겪은 것이다. 사회의 디지털 혁신 계기를 앞당기면서 초연결·초지능의 4차 산업혁명을 적극 맞이할 인프라 구축 등 과제를 미리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좋은 날만 기대되는 건 아니다. 효율과 질서의 그늘 아래서 사람이 설 자리가 갈수록 쪼그라드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마지못해 재택근무를 실시한 기업이 이참에 인력을 줄일 수 있겠다는 발상밖에 못하는 건 불행이다. 개인정보·위치정보를 토대로 동선을 확인·감시하는 건 거대 재난 앞에서 일부 불가피할 수 있다 해도, 정보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빅브러더’에 대한 우려는 더 커졌다. 코로나19는 사람이 기계나 로봇에 밀리고 시스템에 치일 수 있다는 것도 알려줬다.

코로나19가 가르쳐준 메시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렇듯 바뀐 일상을 겪으며 인간의 존재 이유를 새삼 일깨워준 게 핵심이다. 사람들은 비대면과 거리 두기를 하면서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상호의존적 존재라는 사실을 되새겼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며 말하고 듣고, 표정으로 교감하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도 깨달았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 배려와 연대도 배웠다. “안드라 투토 베네(Andra Tutto Bene).” 이탈리아 사람들이 발코니에서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외친 말, “다 잘될 거야”다. 코로나19가 알려준 연대의 상징이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2월24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코로나19 감염증 국내 발생 현황 정례브리핑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는 또 미래의 리더상도 명확히 가르쳐줬다. 리더십 전문가 샘 워커가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언급하면서 코로나시대의 리더로 “카리스마 있고 정치적 계산에 능한 선출직 지도자보다 일관되고 정직한 언급, 정보에 근거한 분석, 끈질긴 침착함을 갖춘 전문가 관료가 낫다”고 했다. 4·15 총선을 막 치른 현시점에서 더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코로나19는 일상뿐 아니라 온 세상사를 뒤집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 국제관계와 세계 정치 지형의 대변화를 예고한다. 이런 와중에 한국 정치만 요지부동으로 보였다. 세상은 이미 확 바뀌어 목숨 걸고 새판을 짜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고 있는데 한국 정치는 여전히 표만 쫓아다니고 있다. 코로나19가 가르쳐준 것이 정쟁뿐인가 싶다. 언젠가 코로나19가 물러가도 코로나19 이전 시기로 그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자명한 사실인데, 한국 정치는 제자리걸음도 아니고 뒷걸음만 친다. 21대 국회의원들은 세상 바뀐 것부터 알았으면 좋겠다. 이미 수개월 동안 겪은 코로나시대에 빛을 발한 리더십은 무엇인지도 생각하기 바란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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