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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15일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과반을 차지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분노한 시민들이 여당에 표를 몰아줬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43년 만에 국회 권력이 민주화 세력으로 교체됐다. “근대사에 처음으로 개혁의 봄이 왔다”고 했다. 하지만 기대는 3개월 만에 차갑게 식었다. 한길리서치의 7월3~4일 여론조사에서 우리당의 지지율(27.1%)은 제1야당인 한나라당 지지율(29.5%) 아래로 내려앉았다. 

2020년 4월15일 21대 총선에서 그들이 다시 의회를 장악했다. 시민들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안정을 택했고, 구태 야당을 심판했다. 그리고 3개월이 흐른 지난 16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9개월 만에 최저인 35.4%로 추락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넘어서는 ‘데드크로스’도 발생했다. 16년 전처럼 승리 3개월 만에 경고장이 날아들었다.

지지율 하락만 반복되는 게 아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제 대통령이 됐고, 국무총리는 여당 대표가 됐다. 그때 그 사람들이 미완의 개혁 과제들을 다시 들고나왔다. 2004년 우리당은 총선 다음날 국회개혁추진단을 구성했다.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법’을 1호 법안으로 내세웠다. 노 대통령은 탄핵 기각 며칠 만에 고위공직자범죄조사처 설치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정부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폐지하려 하자 송광수 검찰총장은 “검찰권 무력화 의도”라고 반기를 들었다. 민주당은 다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을 추진 중이다. 청와대·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힘겨루기도 계속되고 있다. 2004년 6~7월은 행정수도 국민투표 논란으로 뜨거웠다. 그리고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의 청와대·국회 세종시 이전 제안을 시작으로 행정수도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총선 승리 후 민주당 지도부는 우리당 실패의 교훈을 이야기했다. 이해찬 대표는 ‘승리에 취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군기를 잡았다. 덕분에 내부 노선투쟁은 사라졌고, ‘108번뇌’ 같은 초선의원들의 튀는 행동도 안 보인다. 그런데 시민들은 왜 다시 등을 돌리려 할까. 개혁을 탓할 이유는 없다. 시민 다수는 검찰개혁과 지방분권을 원한다. 밥값 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문제는 개혁론의 뒤로 밀려버린 민생이고, 개혁을 말하는 이들의 위선과 오만이다.

2004년 국민연금 납부 예외자가 1년 만에 30만명 증가할 정도로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17대 국회 개원연설에서 “우리 경제는 결코 위기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2020년 6월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 실업률은 10.7%로 21년 만에 최악이다. 청년 45만명이 아예 구직을 포기했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에서 서울 아파트 가격은 94% 상승했고, 문재인 정부 3년간 53%나 올랐다. 상황이 이런 데도 여권이 공수처 설치나 검찰개혁만큼 치열하게 민생 문제 해결에 매달리는 모습은 안 보인다. 실력도 의지도 낙제점이다.

이해찬 대표는 겸손을 말했지만 행동은 달랐다. 민주당은 32년 관행을 깨고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했고, 역대 최고인 35조원짜리 추가경정예산안을 제1야당 없이 단독 처리했다. 이 대표는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진상규명 계획을 묻는 기자에게 “후레자식”이라며 눈을 부라렸다. 남 눈에 티는 보면서 제 눈에 들보는 못 보는 꼴이다. 조국 전 법무장관 논란에서 봤듯이 개혁을 외치는 이들도 권력과 부를 누리며 세습까지 고민하는 기득권 세력이 됐다.

우리당의 승리 후 3개월은 날개 없는 추락의 예고편이었다. 재·보선 40전 40패, 정권연장 실패, 총선 81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민주당의 승리 후 3개월은 어떤 의미일까. 악몽의 재현을 피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민주당에 필요한 건 ‘전태일의 풀빵과 노회찬의 장미’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 전태일다리에서 ‘풀빵과 장미의 만남’이란 주제로 전태일 50주기 행사가 열렸다. 전태일은 생전에 끼니를 거르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동대문에서 쌍문동까지 걸어서 갔다. 통금에 걸리면 파출소에서 잤다. 그에게 풀빵은 먹고살 기본 권리였다. 고 노회찬 의원은 매년 여성의날이 되면 국회 청소노동자와 각계 여성들에게 장미를 선물했다. 장미는 여성의 삶과 권리에 대한 관심 촉구였고, 노동자들이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뜻했다. 시민들은 묻는다. “풀빵과 장미가 없는 그 개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박영환 논설위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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