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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詩想과 세상

곤드레밥

opinionX 2020. 11. 2. 10:3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봄에 갈무리해놓았던

곤드레나물을 꺼내 해동시킨 후

들기름에 무쳐 밥을 안치고

달래간장에 쓱쓱 한 끼 때운다

강원도 정선 비행기재를 지나

나의 위장을 거친 곤드레는

비로소 흐물흐물해진 제 삭신을

내려놓는다

반찬이 마땅찮을 때 생각나는 곤드레나

톳나물,

아무리 애를 써도

조연일 수밖에 없는

그런 삶이 있다 김지헌(1956~)

오늘 시인의 한 끼는 곤드레밥이다. 지난봄 강원도 정선에서 사와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던 곤드레나물을 꺼내 해동한다. 나물에는 역시 들기름이 제격이다. 들기름이란 말만 들어도 고소한 내음이 진동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을 “달래간장에 쓱쓱” 비벼 “한 끼 때운” 시인은 온몸이 노곤해진다. 대충 때운 것치곤 은근 푸짐한 식사다.

곤드레나물은 “비행기재”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동네에서 “나의 위장”까지 여행을 한 셈이다. 여행의 피로가 시인의 몸속으로 스며든 것. 오랜만에 먹는 곤드레밥은 “반찬이 마땅찮을 때” 찾는 별식이고, 일상의 별식은 여행이다. 이번에 낸 다섯 번째 시집 <심장을 가졌다>에 유독 여행시가 많은 건 시인이 별식을 좋아하기 때문이겠지만, “조연일 수밖에 없는” 삶(시)은 조금 아쉽다. 그래도 내 삶의 주연은 ‘나’ 아니겠는가. 가을 갈무리가 끝나기 전에 곤드레밥 한 그릇 해야겠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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