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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차에 걸친 주말 촛불집회는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비롯해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지난 2개월간 정치는 여의도가 아니라 광화문광장에서 이루어졌다. 청와대와 부역자들이 여전히 파렴치하게 버티고 있으니 주말 촛불의 거센 파도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겨울의 한파를 뚫고 완전히 새로운 봄이 올 때까지 거침없이 나아가야 한다.

정치권은 여전히 그들만의 셈법으로 거센 파도의 끝자락에 슬며시 올라타 자신의 깃발을 꽂을 궁리를 하고 있으나, 광장의 시민이 4·19혁명, 1987년 6월항쟁의 한탄스러운 뒷마무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한 ‘죽 쑤어 뭣 주는’ 일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으리라 믿는다. ‘끝낼 때까지 끝나지 않은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촛불 이후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중 하나는 ‘광장의 열기와 지혜를 어떻게 사회발전 동력으로 수렴할 것인가’이다. 지난 2개월간 광장정치의 특징은 3가지로 요약된다. ‘체제혁신에 대한 염원, 자기 조직화된 질서, 그리고 직접민주주의의 실험’이다.

제7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높이 8.5m의 촛불 트리가 세워졌다. 서성일 기자

첫째, 광장에서 표출된 체제혁신에 대한 불타는 염원은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참담한 과거에 대한 각성에서 온 것이다. ‘미래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이상적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갑자기 닥쳐와 삐거덕거리던 낡은 구조는 순식간에 작동을 멈추고 무고한 희생자가 양산될 것’이라는 섬뜩한 통찰로부터 온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엔 세월호 참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자살, 도탄에 빠진 청년들, 무한경쟁의 입시지옥, 그리고 나쁜 사람들이 출세하고 선한 사람들이 제거되는 구체제를 타파해야 한다는 열망이 불타고 있다. 광장의 혁신은 일상화되어야 한다.

둘째, 혁신에 대한 염원이 과거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한다면, 자기 조직화된 질서는 오늘의 지혜를 뜻한다. 평상시 같으면 동네 골목에서도 행인의 어깨를 거세게 밀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광장에서는 약간의 실례에도 양해를 구한다. 빽빽한 지하철에서도 배낭을 등에 메고 남들에게 불편을 끼치던 사람들이 종각역, 광화문역에서는 배낭을 다소곳이 손에 든다. 어떤 힘이 광장을 특별하게 만든 것인가? 자발적으로 조직화된 열린 공간의 신성함,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존중, 그리고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방치한 주권자로서의 자기 회한이 이런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관계의 질서와 지혜는 일상으로 침투해야 한다.

셋째, 대의정치에 대한 문제의식과 직접민주주의의 실험은 광장이 성취하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상이다. 광장에서는 ‘박근혜 퇴진’을 넘어서서 우리 자신과 후대의 삶을 어떻게 조직화할지에 관한 도발적이고 창의적인 제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광장과 주변의 열린 공간들은 정치, 문화, 교육, 복지, 통일 등 사회전반에 걸쳐 창발적인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강력하게 표출하고 있다. 직접적 참여도 일상화되어야 한다.

촛불 이후, 우리는 밑으로부터 창발한 광장정치의 특성들을 일상화, 내면화해야 한다. 광장에서 발아한 소중한 씨앗들을 우리의 삶 전반에 파종하자는 것이다. 박근혜와 부역자들이 물러나고 몇 가지 진실이 밝혀지면 된 것이라는 설익은 종결은 있을 수 없다. 민주주의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것이고, 늘 새로이 직조(織造)되어야 하는 것이다. 체제혁신에 대한 열망, 스스로 조직화된 질서, 직접민주주의의 거대한 실험을 계속할 수 있는 사회적 틀을 만들어내야 한다.

인구가 5000만명이 넘는 나라에서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참여가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이 있지만, 불가능할 것도 없다. 참여의 구조를 체계화하는 것은 고도로 발달한 우리의 네트워킹 기술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모든 시민이 삶의 1% 이상을 항상적으로 정치에 투자함으로써 올바른 정책을 제안하고, 실행에 관여하고 감시하며, 부패하고 무능한 자를 언제든지 소환하는 참여의 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삶의 1%를 미래에 투자하여 우리 아이들이 인간다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머뭇거릴 일이 있겠는가?

신좌섭 |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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