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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작디작은 손들을 볼 때마다
걸음을 멈추곤 한다
은행과 보험사와 증권사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골목의 구멍가게를 지나칠 때
지친 나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나는 집으로 품고 가기 위해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알은체까지 하며
봉지에 적당히 담는 것이다
저것들이 눈을 활짝 열어주는 별이 되리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지만
기쁜 그림엽서쯤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또 내 그림자를 키우지는 못하겠지만
정치 뉴스처럼 짜증스러운 하루를 보듬어주는
우리 집 현관문쯤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저것들의 눈빛이 있는 한
나는 꽤 깊은 밤까지
한그루의 나무를 심듯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것이다
꽝꽝 언 이 겨울 같은 세상살이에서
주택부금을 들 때와 같은 기대감을 품고
가장의 체면도 지킬 것이다 - 맹문재(1963~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바라보는 눈이 따뜻해지는 색을 갖고 있어서, 30촉 알전구처럼 겸손하게 밝아서, 귤은 골목길 구멍가게에 있어야 어울린다. 골목길이 환해지는데, 1000원짜리 몇 장으로도 부자가 되는데, 그래서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빨라지는데, 어찌 귤 앞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귤 몇 개가 어찌 고단한 삶에 위안이 되겠는가. 그러나 빈손! 작정하고 잡으면 금방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일들! 늘 허전하고 따뜻한 것이 그리운 맨손! 그 손에는 위안이 되리라. 계란처럼 손에 꼭 쥐고 싶은 크기. 아이들 머리처럼 자꾸 쓰다듬어주고 싶은 동글동글한 모양. 똘똘한 아이의 눈망울처럼 맑고 초롱초롱한 색깔. 한두 개쯤 덤으로 얹어주기에 알맞은 가격.
가까운 이들과 나눠먹고 싶은 마음을 어찌 알고, 귤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꼭 붙어 있는 것일까.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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