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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등학교에서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가?’라는 질문에 손을 번쩍 든 학생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의 대답을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줄기차게 달리는 이유가 이토록 명백하다는 것을,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인간의 목표가 이토록 단순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사실이니까. 대한민국에서는 더 나아가 서울 한복판에서 점심시간에 목에 사원증을 걸고 테이크아웃 커피 컵을 들고 다니는 걸 ‘꿈’이라고 한다. 

용케 꿈을 이룬 이들은 행복할까? 10년간 대기업에서 충실하게 일한 이는 어느 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회사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어린 시절 신기하게 여겼던 시계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마음먹고, 주말마다 종로에 있는 오래된 시계방에서 시계 조립을 배웠다. 도시의 높은 빌딩 밑 점점 잊히고 오그라드는 좁은 골목길에 진짜 그의 꿈이 있었다. 그는 시계에 들어가는 작은 기계를 깎으며 오랫동안 부질없이 깎여나간 자신의 시간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는 용기를 내서 일 년간 휴직하고 작은 공방에서 더부살이하며 시계를 만들었다. 회사에서는 거대한 기계 속 부품처럼 쓰이다 버려지는 존재에 불과했지만, 공방에서는 스스로 뭔가 창출할 수 있는 능동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일 년이 다 되어갈 무렵,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꿈도 좋지만, 돈벌이가 힘든데 회사로 돌아가야 하지 않냐고. 결국 그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세상의 작은 톱니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틈만 나면 시계를 만들면서 언젠가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시계를 내놓을 꿈을 꾼다. 그를 보며 ‘꿈’을 생각한다. 돈벌이가 급한데 꿈을 꾸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돈벌이가 공부의 목표일 수는 있어도, 꿈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어른들 스스로 ‘우리는 왜 사는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하려나.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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